"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긴장관계가 지속되는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가 처음으로 다자협의체를 통해 공조에 합의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끝난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평가를 내린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 보면 러시아와 다른 나라들의 생각에 차이가 나는 것은 말할 것 없고 나라마다 이해가 제각각이다. 그나마 경제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여서 이 정도 모양새라도 나왔을 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계속 살얼음판을 걷는다면 11월 호주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에서는 결국 깨져버린 G8처럼 어떤 갈등을 노출할지 벌써 우려된다.
G20 재무장관들은 이날 채택한 공동선언문에 '향후 5년간 세계 전체 성장률 목표를 지금 예상보다 2% 이상 올려 잡기 위해 포괄적인 성장 전략을 마련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경제성장을 높이기 위해 투자가 중요'하다거나 '올해 세계경제 성장 전망이 밝다'는 데도 이견이 없었다. 미국의 반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개혁에 대해서는 '실망감'도 표시했다.
눈길을 끈 것은 우크라이나 문제였다. G20 장관ㆍ총재들은 공동선언문에 IMF의 지원 방안 검토를 '환영한다'는 문구를 담았다. 우크라이나 최대 채권국인 러시아의 반대가 없었다는 의미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로이터통신에 "유럽과IMF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참가하겠다"는 뜻도 표시했다. 의장인 조 호키 호주 재무장관 역시 기자회견에서 회의 분위기에 대해 "전혀 긴장감 없이 매우 우호적이었다"며 "(11월 정상회의에도 러시아의)참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공조는 우크라이나의 경제상황이 그만큼 긴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는 700억 달러(70조원) 규모의 채무불이행의 위기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IMF는 이르면 이달 말에 140억~180억달러 규모의 우크라이나 재정지원 계획을 발표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틀 회의 중 우크라이나 문제를 둘러싼 대립이나 미묘한 이해 차이가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첫 날 회의 직전 열린 미러 장관회담에서 제이콥 루 미국 재무장관은 실루아노프 러시아 장관에게 크림반도 합병은 국제법 위반임을 거듭 강조하면서 러시아가 동부 등 우크라이나 위기를 고조시킬 경우 "대러시아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경고했다. 루 장관은 G20 회의 전 소집된 G7 장관회담 결과를 설명하면서도 "러시아 제재 강화에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G7은 회담 후 성명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이 성명은 우크라이나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러시아 제재'라는 말은 담지 않았다. 러시아 재무장관과 만난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상황을 러시아에 너무 어렵도록 만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서유럽 국가들은 미국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신흥국으로 시야를 넓히면 상황은 더 간단하지 않다. 지난달 말 유엔 총회에서 크림반도의 러시아 합병 근거인 주민투표 '무효' 결의안이 표결에 부쳐졌을 때 중국을 비롯해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G20 신흥국 다수가 기권표를 던졌다.
호키 장관은 폐막 기자회견에서 "회의 중 대립은 없었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긴장관계는 없었다. G20은 경제를 논의하는 자리다. 경제성장, 고용창출이 G20이 할 일이다." 11월 호주 브리즈번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도 그리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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