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은 문화 강국이 되기 위해선 결국 청소년들의 교육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1919년 4월 13일)과 경교장의 의미를 청소년들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을 제가 제대로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전(前) 백범 김구기념관 자료실장 홍소연(56)씨는 백범 김구 선생 전문가다. 그렇다고 유수 대학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는 아니다. 하지만 30년간 백범 김구기념사업회에서 일을 해오며 백범 일지 등 김구 선생의 발자취를 연구하고 기록해 온 그는 김구 선생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5주년(13일)을 앞두고 11일, 최초의 임시정부 국무위원회가 열린 곳이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통일운동을 이끌었던 역사의 현장에서 그를 만났다.
현재는 경교장에서 안내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홍씨. 그는 "서울 한복판에서 학생들에게 한국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의 역사적인 의미를 가르쳐 줄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일제의 억압이 아니었다면 김구 선생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 살았을 것"이라고 했다.
홍씨는 백범일지 등에 기록된 김구 선생의 교육열에 대한 일화를 하나 소개했다. "상하이에서 귀국한 김구 선생이 1946년 자신이 옥살이할 때 구명운동을 하느라 가산을 탕진한 김주경이라는 사람의 흔적을 찾기 위해 강화를 찾습니다. 그의 집으로 추정되는 곳에 한동안 머물며 그 동네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직접 서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홍씨는"당시 강화의 한 학교(합일초등학교)에서 열린 환영 행사에 참석한 한 김구 선생은 '홍익인간'이라는 휘호를 남겼다"며 "그 휘호는 지금까지 이 학교에 소장돼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기념사업회는 당시 서당으로 쓰였던 김주경의 집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김구 선생은 '청소년의 교육을 통해 독립과 조국의 미래를 꿈꿨다'는 것이 홍씨의 설명이다. 반면 이는 요즘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면서 그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이 세월 속에 잊혀져 간다는 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홍씨는 "김구 선생이 했던 것처럼 현재 경교장의 한편에 작은 공간에서라도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자연스럽게 역사를 들려주는 게 저의 사명이자 꿈"이라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김구 선생의 호인 백범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못 이해하는 부분이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흰 한복을 즐겨 입은 김구 선생의 이미지 때문에 선생의 호가 '흰 백'자에 호랑이를 뜻하는 한글 '범'자로 잘못 알고 있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러나 백범(白凡)은 '백정처럼 천하고 평범한 사람인 자신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것만큼 다른 이들도 나라와 민족을 사랑해 달라는 뜻'입니다."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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