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회를 준비하면서 오래된 연습습관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자기규범이 철저하지 않은 음악가의 자구책일 수 있겠지요. 연습을 시작하면서 스톱워치를 누릅니다. 벽에 등을 기대어 쉴 때, 전화를 받을 때, 냉장고에 마실 다녀올 때 등등은 철저하게 스톱워치를 정지합니다. 그렇게 체크한 시간들을 예금하듯 쌓아 놓습니다. 탁상달력은 연습시간을 관리하는 통장과 같아 하루에 세가지 숫자를 기록해놓습니다. 연주회로부터 며칠이 남았는지, 오늘 몇 시간을 연습했는지, 이제껏 연습한 시간의 총합은 얼마인지.
독주회를 마라톤에 빗대자면, 초창기 연습은 단거리를 알몸으로 반복해서 달리는 훈련으로 몸을 만듭니다. 이야기의 결을 따라 악절을 단속적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짧은 악절에 한동안 머물러 원형을 달리듯 돌고 돕니다. 그 장면이 기승전결의 기에 불과하더라도, 마치 그 장면만으로 또 하나의 완결된 기승전결을 이룰 만치 전력을 다해 표현의 규모를 확장합니다. 이때 페달의 두꺼운 옷을 벗어 알몸과 같은 낱낱의 소리를 듣기도 합니다. 페달의 든든한 외투를 벗어 던진 소리는 수줍고도 건조한 음색입니다. 그러나 알몸이 되어 바람의 결을 생생히 느끼듯, 건반과 접촉한 손끝의 감각은 이제야 섬세히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페달에서 해방된 두 발 역시 땅을 온전히 디딜 수 있어 좋습니다. 튼튼히 뿌리내린 두 발은 엉치뼈의 좌우를 오가는 몸뚱어리의 균형을 세심히 인지하도록 돕는 것이지요.
이렇듯 페달 없이 연습하는 과정은 연극배우들이 또렷한 발음을 위해 이빨 사이에 연필을 물고 대본을 읽는 훈련과도 비유할 수 있겠지요. 손가락 끝과 건반의 접점을 견고히 혹은 섬세히 점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할 테고, 페달의 윤색이 없더라도 악기의 음색은 홀로 공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만 안주하거나 완전히 젖어들어선 안됩니다. 연필을 입에 문 채 상대 배우와 합을 맞출 수 없을 테니까요.
한편, 한 곡에 치우쳐 몰두하지 않기 위해 두 곡씩 짝을 지어놓고 a-b-c-d로 순환하며 평등하게 연습하기도 합니다. 부분연습과 별도로 장거리에 성공한 때는 곡별로 바를 정(正)자를 그려 현재의 위치를 점검합니다. 새로 공부한 곡들은 훨씬 더 빨리 출발시켜 예전에 공부한 곡들이 압도하지 않도록 균형을 맞춥니다. 이 중 삼 겹 안전장치를 더 하기 위해 어느 때는 짝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한 획 한 획 새겨가기도 합니다. 이름을 다 완성하기 전에는 악기로부터 떠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프레이즈를 최소 맥락으로 나누고 페달 없이 연습하며 기초공사를 튼튼히 다진 후엔, 악절을 두세 개씩 접합해 좀 더 횟수를 더합니다. 페달 없이 맨발로 달리던 길을 첫번째는 페달과 함께, 2, 3번째는 페달 없이, 4, 5번째는 다시 페달, 6번째는 페달 없이, 7번째는 페달의 공명을 더 해 걷습니다. 하중과 거리에 헉헉대던 벌거숭이 첫 시작에 비하면 일곱 번째 마무리는 손과 귀 그리고 기억력에 문명화라도 거친 듯 세련된 매무새가 느껴집니다.
그런데 페달을 밟는다는 것은, 이전에 공고히 쌓아 올린 발음의 성곽을 다시 흩뜨려 놓는 일과도 같습니다. 악기를 통해 청각과 촉각으로 점검하는 차원이 확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테면, 모든 음을 따따부따 발음하는 대신, 음과 음이 만나 함께 움직이는 방향이나, 음과 음이 만나 함께 자아내는 색감이나, 음과 음이 만나는 충돌 혹은 화해 같은 것들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페달 없이 연주하는 소리는 유화물감과 같아서 음과 음이 좀처럼 섞이지 않아요. 페달을 밟으면 악기의 음색은 수채물감처럼 서로의 몸을 탐하며 섞습니다. 그러나 이때 자칫 탁색으로 오염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상대방 고유의 채도를 돋구고 지지하며 스스로 혼탁해지지 않은 것, 어쩌면 페달의 쓰임 역시 인간관계와 닮았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개별 음을 규정하는 윤곽을 넘어 함께 울리는 음의 공명이 참 좋습니다. 좋은 물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느낌이랄까요. 여러 배음이 동시에 공명하는 풍부한 울림은 피아노란 악기의 가장 큰 장점일지 모릅니다.
조은아 피아니스트ㆍ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