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양시 효성기술원 연구동 내 스판덱스 화학실험실에선 연구원들이 흰색의 점액질 액체가 든 2리터짜리 실험용 비커를 유심히 관찰하고 있었다. 모터에 연결된 프로펠러 회전축이 비커 속 액체를 쉴새 없이 저었고, 연구원들은 축의 회전 속도와 비커의 온도, 그에 따라 변하는 액체의 점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이 액체는 스판덱스의 최종 원료인 '도프'다. 도프를 머리카락보다 얇은 구멍으로 넣고 270도의 열풍을 쏘면, 순간 고체로 변하면서 스판덱스 원사가 나온다. 실험을 총괄하던 조상원 연구팀장은 "점도가 높을수록 제품의 신축성도 높아진다. 실험을 통해 최적의 생산조건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합성섬유의 일종인 스판덱스는 고무실에 비해 강도가 3배 높고 길이가 최대 8배까지 늘어나는 특성 때문에 내복, 수영복, 운동복 등에 널리 쓰인다. 국내 최초 독자기술로 스판덱스를 개발한 효성은 1992년 '크레오라'브랜드로 상업생산을 시작한 뒤, 2010년부터는 부동의 세계 1위 미국의 '인비스타'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는 점유율 31%를 기록하며 11억5,000만달러의 수출실적을 거뒀다.
효성기술원은 바로 그 기술의 요람이다. 올해로 43년을 맞는 국내 첫 민간 기술연구소로, 연구인력만 200명에 달한다. 크레오라는 물론 2009년 탄소섬유, 지난해 폴리케톤 등 차세대 고부가가치 소재들을 잇달아 개발하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기술원은 ▦연구동 ▦분석센터 ▦파일럿 공장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동에서 신소재를 개발하면 분석센터에서 테스트를 거친 후 파일럿 공장에서 시험생산에 들어가는 식이다. 지난 8일 찾아간 연구동 내 스판덱스 실험실에선 도프의 점도를 높이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MDI와 PTMG라는 화학물질이 1000분의 1초 속도로 반응해 도프가 탄생하는데, 평소 실험실에선 두 물질이 반응하기 전 고르게 섞는 설비를 고안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조상원 팀장은 "균일하게 섞여야 실의 탄성도 좋아진다"라고 말했다.
분석센터에선 200여종의 전문시험장비를 이용해 자사 및 경쟁사의 제품을 비교분석하고 있다. X-레이와 전자현미경 등 첨단장비도 동원된다. 한 연구원이 전자현미경으로 약 500배 확대한 중국산 실의 단면을 보여주며 "이렇게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실은 쉽게 끊어지고, 천을 짜더라도 올이 나갈 확률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
파일럿 공장에서는 연구원들이 건물 2층 높이의 설비에서 쉼 없이 생산돼 내려오는 수십 가닥의 실을 보며, 굵기와 탄성을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다. 서승원 섬유연구그룹 부사장은 "효성은 스판덱스 개발 후 20년여 년 간 끊임 없는 연구를 통해 현재 10여 종에 달하는 상품군을 생산하고 있다"며 "중국 등 해외업체의 추격이 거세지만, 고유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키면 1위 수성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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