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의 볼리비아 혁명일기가 발간되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컴백 무대에서 골반을 흔들고 '우리는 모든 금지를 금지한다'는 해방의 선언이 파리의 거리를 뒤덮은 해가 1968년이다. 핵전쟁 또는 빙하기. 뭐가 일어나든 현 문명이 절멸되고 아득한 뒷날 고고학의 발굴 대상이 됐을 때 '1968'이라는 숫자는 자유주의라는 챕터의 앞쪽에 등장할 것 같다. 그런데 고고학자는, 이 음각문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리지 않을까.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스스로 국가 건설에 참여하고…'
근사한 개교 100주년 기념탑이 서 있는 당진의 어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오랜만에 이 글귀를 만났다. 솔직히, 반가웠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능률과 실질을 숭상할 뜻도 전혀 없는데, 여튼 내 기억 속 가장 여린 시간대에서 이 글귀는 아직 생생한 것이어서, 문득 어린 시절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된 건 1968년 12월 초다. 비(碑)의 뒷면을 보니 이 돌 또한 그 해가 가기 전에 세워졌다. 뭐가 그리 다급했던 것일까….아무튼 결론은,
돌에다 새기지는 말자.
돌은 나무처럼 썩지도 않고 금속처럼 녹슬지도 않는다. 그러니 누구에게 뭐를 하자는, 해야 한다는, 옳고 그르다는 말은 뭐가 됐든 제발, 돌에다 새기지는 말자. 반가운 글씨체에 반가운 글귀였지만, 나는 먼 미래 누군가의 시선 앞에 조금 부끄러워졌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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