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화엄경(華嚴經)으로 부르는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부처님이 최초로 설법한 경전으로 불교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어요. 6년간 고행하던 부처님이 부다가야 보리수 밑에서 정각(正覺ㆍ최고의 깨달음)을 이룬 뒤 21일 동안 설법한 내용이지요."
한국 불교의 대강백(大講伯)인 무비(無比ㆍ71ㆍ동화사 한문불전승가대학원장) 스님이 8일 부산 금정산 범어사 화엄전에서 기자간담회를 했다. 탄허 스님의 강맥을 이은 스님이 화엄경 80권 한글 번역 작업의 첫 분량인 (담앤북스 발행)의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1~5권을 발간한 것을 기념해서다. 은 매년 8~10권씩 내 2022년까지 완성할 예정이다. 세주묘엄이란 눈 앞에 펼쳐진 두두물물(頭頭物物)이 세상의 주인으로서 하나같이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이라는 뜻이다. 화엄경은 최고의 불경이지만 부처가 깨달은 진리를 별도의 풀이 없이 그대로 드러내 보였기에 내용이 어렵고 방대하다. 그런데도 화엄경을 해설한 책은 거의 없었다.
무비 스님은 "화엄경의 첫 구절인 '그 땅은 견고하여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다(基地堅固 金剛所成)'는 화엄경 전체를 푸는 열쇠"라고 했다. "부처님이 깨달은 부다가야 보리수가 있는 곳에는 척박한 모래 자갈 밖에 없지만, 그래도 깨달으면 마치 첫 사랑을 할 때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처럼 그곳의 모래 하나까지도 다이아몬드처럼 소중하게 보이지요."
스님은 "화엄 정신이 실현된 세상은 남을 아끼고 배려해서 갈등과 전쟁이 있을 수 없고 불필요한 소비와 개발도 하지 않는다"며 "서양학자들조차 화엄경을 인류의 최고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님은 화엄 정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는 질문에 "현실을 생각하면 절망스러울 때가 있다"며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맑게 하려는 작은 샘물이 있다면 희망이 없지는 않다"고 답했다.
스님은 10여년 전 수술을 받다 신경을 다쳐 하반신 마비가 오면서 거동이 불편해지자 인터넷 법당을 열었다. 스님의 인터넷 카페 '염화실'에는 2만여명의 회원이 호흡한다. 스님은 또 4년 전부터 부산 문수선원에서 화엄경 강의를 하고 있는데 출가자 150여명과 신도 200여명이 참석해 법열을 즐긴다.
스님은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조계종 막가파'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입바른 소리를 한 적이 있다"며 "바다처럼 넓은 화엄의 세계를 헤엄치다 보니 이제는 너그러워졌다"고 했다. 하지만 스님은 대승불교를 자처하는 한국 불교에 장군죽비를 내렸다. "한국 불교의 현재 행태는 80~90%가 영락없이 소승불교예요. 자비행과 보살행이 너무 부족합니다. 힐링, 마음 다스림 같은 게 유행하는데 열심히 자비를 베풀고 봉사를 하다 보면 그런 것 할 겨를이 없어요."
스님은 요즘 '사람이 곧 부처' 즉 인불(人佛)사상을 전파하는 데 여념이 없다. "부처님이 중생을 제도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다릅니다. 부처님은 모두가 부처라는 사실을 일깨워줬을 뿐입니다. 다른 사람을 부처로 받들면 그는 물론 나 자신도 행복해지지요."
1943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스님은 58년 출가한 뒤 월정사 탄허 스님에게서 화엄경을 배워 그 강맥을 잇고 있다. 통도사ㆍ범어사 강주, 초대 조계종 교육원장, 동국역경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등의 저서를 냈다.
부산=글ㆍ사진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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