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2부(부장 김범기)는 터치스크린 제조업체인 디지텍시스템스를 사들여 600여억원의 회사 돈을 빼돌린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로 기업사냥꾼 최모(52)씨를 구속기소했다고 7일 밝혔다. 최씨는 자신의 돈은 한 푼 들이지 않은 채 사채업자를 동원해 회사를 인수했으며, 한해 매출만 2,300억원에 달했던 회사는 최씨가 인수한지 2년여 만에 820억원의 빚만 남은 '빈껍데기' 회사로 전락했다.
"회사 운영권을 주겠다" 악마의 유혹
2011년 말 최씨는 코스닥 상장사인 고제를 인수해 거액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을 받다 보석으로 풀려난 직후 터치스크린 생산 1위 업체인 디지텍시스템스가 매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씨는 위모, 홍모씨 등과 함께 "사채업자에게 지분을 담보로 맡기고 먼저 회사를 인수한 뒤 모자란 돈은 회사 자금으로 충당하면 된다"고 공모하고, 작업에 들어갔다. 위씨와 홍씨는 각각 유명 탤런트의 전 남편으로 잘 알려진 인물들이다.
이들의 '레이더망'에 포착된 것은 회사 재경팀장이었던 남모(40ㆍ구속기소)씨였다. 이들은 남씨에게 "회사 돈을 인수 대금으로 빌려주는데 협조하면 운영권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남씨는 경영지원본부장이었던 정모(48ㆍ구속기소)씨를 끌어들였고, 인수한 주식의 명의를 빌려 줄 '바지사장'으로 G사 대표 유모(44ㆍ구속기소)씨를 최씨에게 소개했다.
검찰에 따르면 남씨가 최씨에게 인수 대금 명목으로 빼내 준 회사 돈은 170억원에 달한다. 차명 대가로 유씨에게 회사 돈 135억원을 들여 또 다른 회사를 사준 사실도 적발됐다.
헤어날 수 없는 사냥꾼의 올가미
인수 작업이 마무리된 2012년 2월 이후 최씨는 회사 돈을 거리낌없이 빼내기 시작했다. 남씨는 재무담당이사, 정씨는 대표가 됐지만 회사는 사채업자와 최씨의 소유였다. 검찰 관계자는 "남씨 등은 이미 공범이 된 상태라 최씨의 돈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회사에 인력을 공급하는 업체 계좌로 회사 자금을 이체시켜 170억원을 챙겼는가 하면,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어 가짜 거래 상품 대금을 빼돌리는 등 최씨가 가져간 돈은 360억원에 달했다. 금융권으로부터 대출 받은 회사 운영자금도 최씨 몫이었다.
검찰은 현재 디지텍시스템스가 횡령 과정에서 회계처리 기준을 위반해 재무제표를 작성한 혐의에 대해 수사 중이다. 또 이들이 삼성전자의 매출채권을 위조해 180억원 상당을 사기 대출 받았다는 한국씨티은행 고발 사건도 조사하고 있다. 검찰은 최씨의 계속된 요구에 남씨 등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벌인 고육지책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디지텍시스템스는 한국거래소에서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정됐고, 주식 매매거래는 정지됐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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