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대표하는 고급차 메이커 중 하나인 BMW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는 브랜드다. 지난해 196만여 대의 차를 판매해 사상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고, 대당 수익도 매우 높은 알짜배기 기업이다. 경기 침체와 극심한 경쟁으로 세계 자동차 업계가 계속 몸살을 겪고 있는 가운데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BMW는 돋보일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한창 잘 나가고 있지만 BMW도 과거에는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은 시절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독일은 패전국으로 국가 전체가 경제적 혼란에 빠졌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전쟁 중 생산 기반이 대부분 파괴됐고, 그나마 피해가 적었던 곳은 분단으로 동독 지역에 편입된 곳이 많았다.
BMW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후 수익성 높은 고급차는 구매자가 적어 팔리지 않았고, 그나마 수요가 많았던 소형차는 당장 만들어 팔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소형차 생산의 거점이었던 아이제나흐 공장이 동독에 편입되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부도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극심한 경영난을 겪었다.
BMW 경영진은 어려움을 헤쳐나갈 방법을 이탈리아에서 찾았다. 당시 이탈리아에서는 이소(ISO)라는 신생회사가 만든 초소형차 '이세타(Isetta)'가 큰 인기를 얻고 있었다. BMW는 모터사이클용 엔진으로 달리는 이 차가 독일에서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세타와 같은 초소형차는 자동차 면허 대신 모터사이클 면허만 있어도 몰 수 있었고, 일반 소형차의 절반 가격으로 내놓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미 독일에서는 간단한 구조와 모양새 때문에 '거품차(Bubble car)'라는 별명을 얻은 이런 유형의 차가 유행하고 있었다. 큰 시장을 놓칠 수 없었던 BMW는 이소와 계약을 맺고 이세타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성능과 생산성을 고려해 자사 모터사이클 엔진을 얹고 부분적으로 독자 설계를 반영한 BMW 이세타는 1955년부터 판매되기 시작했다.
BMW의 결단은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세타는 차체 앞부분 전체가 문으로 되어 있는 독특한 생김새로도 화제가 되었고, 데뷔와 함께 큰 인기를 얻었다. 이후 꾸준히 성능과 꾸밈새가 개선되어 인기에 부응했고, 1962년까지 16만2,000여대가 판매되었다.
이 차의 성공 덕분에 BMW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세타의 성공이 아니었다면 BMW는 주저앉고 말았을 테니, BMW의 구세주는 작고 보잘 것 없었던 '남의 차'였던 셈이다.
류청희 자동차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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