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들어가 봤더니 경기 파주에서 추락한 무인기 때문에 말들이 많았다. 북한이 보낸 무인기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의견과, 그에 반대되는 입장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었다. 정부가 북한 측 무인기라고 추정하는 근거는 '기용날자'라는 표기 때문인데, 우리말 '날짜'를 북한은 '날자'로 쓴다는 점, 그 '날자'가 무인기에서 발견되었다는 점 등을 증거로 대고 있었다. 정부의 발표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은 '기용날자'라는 표기의 글씨체가 아래아 한글체라는 점, 북한의 공식 문서는 '창덕체'라는 점을 들어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처음 무인기가 발견되었을 때, 군관계자들이 "대공 용의점이 없다"라고 말한 점은 믿는 쪽과 믿지 않는 쪽 모두에서 비판받고 있었다.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것이 북한에서 보낸 무인기가 맞느냐, 맞지 않느냐, 하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다. 나는 '창덕체'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뿐더러, 북한 무인기의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또한 제대로 공부하거나 자료를 찾아본 적이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을 보면서 든 짧은 생각 하나는 우리 사회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불신 사회'로 접어들었구나, 하는 점이었다. 정부의 발표가 제 아무리 인과성을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면 뭐하나. 국민이 그것을 불신하고 거짓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사실 이 점이 북한의 무인기보다 더 커다란 위협이고 시급한 일인데, 정부 관계자들만 그것을 모르고 있는 눈치이다(아니, 모른 척하고 있는 눈치이다).
에둘러 말할 것도 없이 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 뿌리에는 '국가정보원'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놓여 있다. '대선 개입' 문제에서부터 '간첩 증거 조작' 사건에 이르기까지, 국정원이 내놓은 자료들과 정보들은, 그들이 말한 인과성은, 모두 만들어지고 창작된, 그들만의 원인과 결과로 밝혀지게 되었다. 그런 마당이니, 북한에서 넘어온 무인기가 분명하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소설만 십오 년 넘게 써온 내가 국정원에게 보다 은밀하고, 보다 리얼한 조작 혹은 허구의 구축 과정을 가르쳐 줄 작정이니, 관계자들은 밑줄 좍좍 그으면서 잘 새겨듣길 바란다.
현재 국정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개연성'은 이해했을지 몰라도 '핍진성'까지는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그 원인이 있는 듯싶다. 소설 창작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동력인 '개연성'과 '핍진성'은 흔히 비슷한 개념으로 통용되나, 사실 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아들은 자라서 폭력적인 아버지가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고 치자. 이건 개연성의 측면에선 별로 문제될 게 없는 이야기이다. 그 나름대로의 인과관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핍진성까지 갖추려면 이것으론 부족하다. 원인과 결과 이외의 것들, 그러니까 아버지한테 맞을 때 아들이 보았던 하늘빛이라든가, 저도 모르게 씰룩이던 입술,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나날 중 꾸었던 꿈들과, 비가 내리면 저도 모르게 어딘가로 뛰어가던 시간들, 그렇게 스토리에서 빼도 상관없는 묘사들, 그런 잉여들까지 세밀하게 포함되어야만 비로소 핍진성을 갖추게 된다. 그리고 그런 핍진성들이 허구를 사실보다 더 사실답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국정원은 그런 핍진성을 갖출 만한 능력이 전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계속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아들이 자라서 폭력적인 아버지가 되었다만 외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니 정부가 발표하는 북한쪽 정보 또한 모조리 불신 받을 수밖에. 정말 북한의 위협이 심대하고 화급한 일이라면, 국정원부터 개혁하고 나설 일이다. 그래야 개연성은 물론, 핍진성까지 확보된다.
이제 원인과 결과만으론 부족하다. 진실을 진실답게 만드는 세부적인 것들, 잉여적인 것들, 그런 것들이 필요하다. 지금의 국정원은 예전과 하나도 변한 게 없다. 거기에서부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이기호 소설가ㆍ광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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