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 종양으로 자궁적출수술을 받은 A씨는 다시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다. 정기 검진을 위해 유방 초음파검사를 받던 중 발견된 "종양을 떼내야 하느냐"고 묻자 의사는 "필요 없다. '아래'도 수술한 사람이 '위'도 하고 싶느냐"며 불쾌감을 느끼게 했다. 의사는 자신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자 "너무 황홀해서 그러시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병원 진료를 받은 여성 10명 중 1명꼴로 성적 수치심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7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의뢰로 작성한 '진료과정 성희롱 예방기준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의료기관을 이용한 성인 여성 1,000명 중 11.8%(118명)가 성적 불쾌감이나 수치심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중복응답을 포함해 255건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공간에서 옷을 벗거나 갈아입어 수치심을 느꼈다는 대답이 46건으로 가장 많았다. ▦자신의 외모나 신체에 대해 성적으로 표현한 의료인의 언행(30건) ▦진료와 관계 없는 사람이 듣는 상황에서 성생활 문진(25건) ▦진료와 관계 없는 접촉(23건) 등이 뒤를 이었다. 성폭행을 당했거나 당할 뻔한 사례도 2건 있었다.
의료기관 규모가 작은 의료기관에서 성희롱이 빈발했다. 피해 사례는 100병상 미만 병원급(51.7%), 10병상 미만 의원급(50.8%), 100병상 이상 종합병원급(24.6%), 상급종합병원급(11.9%) 순이었다. 보고서는 "대형의료기관에서는 성희롱 예방교육이 비교적 주기적으로 이뤄지고 문제된 의료진에 대한 규제나 환자 권리보장 방안이 마련돼 있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진료과목으로는 내과(50.8%) 산부인과(45.8%) 정형외과(24.6%) 한의원(21.2%) 순으로 많았다.
피해자들은 성적 불쾌감을 경험하더라도 아무 행동을 하지 않거나(52.5%), 해당 의료기관에 다시 가지 않는 등(31.4%)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 직원에 이의를 제기하거나(6.8%), 병원 책임자에게 조치를 요구하는 경우(4.2%)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 이유는 진료 과정의 일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46.9%), 적극 대응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30.2%) 등이 꼽혔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연구위원은 "의료행위는 밀폐된 진료실에서 이루어지고 신체 접촉도 많기 때문에 성적 수치심을 느낄 여지가 많지만 지금까지 의료계에서는 이를 당연시 해왔다"며 "병원 내에서 윤리 규정과 교육을 강화하고 지방자치단체나 보건소 차원에서 환자를 보호하기 위한 상담 창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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