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보유자 황수로씨 작품 구성… 순조 즉위 30년 기념잔치 재현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손으로 인두질 모양 낸 후 밀랍 발라 고정꽃술은 노루·모시털로 만들어임금 주위에 꽂는 준화 높이 3m… 제작비 비싸 금지령 내리기도
조선시대 궁중 잔치를 기록한 의궤의 그림에는 꽃 장식이 많이 나온다. 큼직한 항아리에 꽂은 꽃가지는 사람 키보다 훨씬 크다. 잔칫상에도 꽃가지가 놓였는데 참석자는 모두 머리에 꽃을 꽂고 있다. 이 꽃들은 생화가 아니라 최고급 비단으로 만든 것이다. 여름에는 모시를 쓰기도 했다. 생명을 존중해 꽃을 꺾지 않고 만들어 썼다. 궁중 잔치에 장식용으로 만들어 쓰던 이 꽃들을 '채화(彩花)'라고 부른다. 채화는 2013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4호로 지정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의 '아름다운 궁중채화'전(4월 8일~5월 25일)은 조선 왕실의 꽃 문화를 보여주는 전시다. 채화는 매우 정교한 공예품이다. 천연재료를 써서 처음부터 끝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든다. 꽃잎은 하나하나 인두질해서 모양을 내고 밀랍(꿀 찌꺼기)을 발라 형태를 고정한다. 꽃술은 송화가루 등 꽃가루를 꿀에 개어 노루털이나 모시털 끝에 발라서 만든다. 밀랍과 꿀을 사용해 은은한 향기가 있다. 실제로 2004년 덕수궁 중화전의 야외 월대에서 궁중채화를 전시했을 때 벌과 나비가 날아들었다. 꽃 빛깔은 천연염색으로 낸다. 사계절 꽃 피고 지는 때에 맞춰 색색의 꽃과 열매로 염색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제작비가 비싸 왕명으로 채화 금지령이 내린 적도 있었다.
이번 전시는 궁중채화 기능보유자 황수로(79)씨가 만든 작품들로 구성했다. 1829년(순조 29) 순조의 즉위 30년과 40세 생신을 기념해 창경궁에서 열린 잔치의 채화를 재현했다. 왕이 주관하는 외진찬은 명경전에서, 왕비가 주관하는 내진찬은 자경전에서 있었다. 홍도화 벽도화 모란 월계화 국화 연꽃 등 당시 쓰인 채화는 외진찬에 5,289송이, 내진찬에 6,557송이로 제작비는 요즘 가치로 각각 5,000만원과 1억4,000만원이 넘는다.
가장 크고 화려한 것은 임금의 정면에 좌우로 하나씩 홍도화 벽도화를 꽂은 준화(樽花)다. 용이 그려진 청화백자 항아리에 나뭇가지를 꽂았는데,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높이가 3m나 된다. 꽃이 구름처럼 피었고 벌과 나비, 잠자리, 새가 날아든다. 모두 비단과 밀랍, 꽃가루, 새 깃털 등을 사용해 손으로 만든 것이다. 꽃에 벌이 날아들 듯 왕과 군신이 하나로 화합하는 뜻이 담겼다.
잔칫상 음식에 꽂은 채화는 신분과 지위에 따라 크기와 종류가 달랐다. 예컨대 대ㆍ중ㆍ소 수파련(水波蓮ㆍ연꽃 채화) 중 대수파련은 왕의 상에만 꽂았다. 전시는 왕, 왕비, 세자의 상차림과 채화 장식을 따로따로 재현해 보여준다. 높이 고인 음식 위에 솟은 크고 작은 꽃가지가 아름답다.
정재(궁중무용)를 올릴 때 설치하는 지당판(池塘板ㆍ연못을 상징하는 평상 모양의 가구)은 중앙에 큼직한 연꽃 한 쌍을 놓고 둘레에 모란꽃 화병 7개를 놓은 꽃무대다. 무희나 무동은 지당판을 돌면서 꽃을 향해 원을 그리며 춤을 췄다.
은퇴 관리를 위한 기로연을 장식하던 윤회매도 볼 수 있다. 윤회매는 밀랍으로 만든 매화다. 꽃-꿀-밀랍-채화로 한 바퀴 돈다 해서 '윤회'매다. 윤회매는 선비들의 취미로도 널리 퍼졌는데 밀랍초의 촛농을 모아 만들었다. 가난한 실학자 이덕무가 윤회매를 잘 만들어 10전씩 받고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전시장 한쪽에 프랑스 비단꽃 장인 브뤼노 르제롱의 꽃 장식을 따로 전시했다. 조선의 궁중채화와 달리 의상과 패션에 쓰는 것들인데, 제작 도구와 기법에 비슷한 점이 많다. 4대째 비단꽃을 만들어온 장인 집안의 솜씨를 볼 수 있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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