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아니면 어디서 이런 형님․동생 만나겠어요”
사계절 중 ‘기다리다’는 유독 봄에 어울린다. 겨우내 웅크렸던 몸을 펴고 뛰어오르고 싶은 건 개구리뿐 아니다. 바야흐로 야구시즌이다. 두꺼운 외투 속에서 봄을 기다리던 야구인들이 배트 글러브를 들고 운동장으로 뛰어나온다. 프로선수? 아니다. 사회인야구단 이야기다. 어른스레 앉아있던 이들은 유니폼만 입으면 펄쩍펄쩍 날아다니는 어린아이가 된다. “야구는 동심스포츠예요. 1982년 창설된 프로야구를 보고 자란 지금 30대 친구들은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흙먼지 일으키며 배트 휘두르던 추억이 있을 겁니다.”
성광모(41) 사단법인 사회인야구연합회(전사연) 회장은 열혈 야구 아저씨다. 격투기 등 격렬한 운동을 즐기던 그는 서른 줄로 접어들면서 좀 덜 다치는 운동, 덜 힘든 운동을 찾다 야구를 시작했다. 그러다 야구의 매력에 빠져버렸단다. “사실 야구가 더 힘들어요. 수비는 그냥 서있는 거처럼 보이지만 상대 타자에 따라서 팀 전체가 연습한 대로 대열을 바꾸거든요. 팀플레이지만 혼자서 싸워야 하는 부분도 있고! 그래도 참 재밌어요.”
덜 다치는 운동 찾다 만난 야구
사회인야구리그는 수준에 따라 1~4부로 구성, 경기는 7회까지 2시간씩 나눠 4시간동안 진행된다. 일반 남성들의 체력을 고려한 것이다. 정확하진 않지만 전국적으로 45만 명, 대구에만 1200개 팀이 사회인야구 활동을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TV를 통해 연예인야구단소식 정도만 봤지 실제로 대구시내에서 사회인야구경기를 본적이 거의 없을 것이다. 비싼 장비 탓에 부자 취미로 치부된 경향도 있다.
“비용이 들긴 해요. 마트에 파는 만 원짜리 글러브로 공을 받으면 바로 터집니다. 안전하게 사용하려면 장비가 비싸더라구요. 그렇다고 사회인야구가 마이너한 종목은 아닙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어요. 근처에서 흔히 못 본 이유는 구장이 없어서 교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죠.”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는 성공한 직장인들이 사회인야구단에 소속돼 경기를 펼치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김민종이 공을 던지고 김수로가 받는다. 타석에는 장동건 선수! 화려한 인물을 지우면 경기장이 보인다. 불규칙 밸런스로 부상의 위험이 큰 흙먼지 폴폴 날리는 학교운동장. 경기장이 부족해 이런 곳에서 연습하는데 이마저도 경쟁이 치열해 빌리기 쉽지 않다. 현재 대구 사회인야구경기장은 2곳. 대구 사회인야구팀들은 성주, 영천, 구미 등 교외로 나가 경기를 치른다. 팀당 연간 280만 원 상당(대구 기준)의 리그비를 경기장에 내면 한 달에 1번 정도 경기를 할 수 있다.
“경기를 하려면 적어도 15명은 필요하죠. 거기에 가족이나 친구들이 함께 가는 경우도 많으니 한 경기당 오십여 명이 움직이는 셈입니다. 이 사람들이 쓰는 기름값, 식비 등이 대구에서 빠져나가는 거죠.”
대구엔 사회인야구장 2곳뿐
인구 12만의 소도시 공주에서 전국사회인야구대회가 지난해까지 3회째 열렸다. 전사연 공주지부가 주최한 ‘고맛나루 전국사회인야구대회’가 ‘무령왕배 사회인야구대회로 발전, 전국 42개 팀이 참가하는 큰 행사가 됐다. 여기에는 시의 적극적인 지원이 따랐다. 수십 개의 야구단이 대회기간 숙박, 식사, 주유 등 공주에서 쓰는 돈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 효과는 지역 상인들이 가장 먼저 느꼈다. “언제 또 이 대회가 있느냐. 내년에도 하는 거 맞느냐면서 식당주인들이 좋아하세요. 야구복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가게를 메우니 시민들에게 자연스레 홍보가 됐죠. 이제는 공주시 전체 축제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성 회장은 대구시도 사회인야구단을 단순한 취미클럽으로 보지 않고 경제적 차원에서 봐주길 촉구했다.
전사연은 경기장 부족, 정보수집 루트 빈약, 타 스포츠에 비해 턱없이 적은 전국대회 수 등 열악한 사회인야구 환경개선과 이 같은 현실을 정부, 지자체에 알리기 위해 지난 2008년 대구에서 시작했다. 지난해 7월에는 대구지부가 출범, 전국 13개 지역연합회가 구성됐다. 성 회장은 1년 전부터 개인 사업을 접고 연합회 일에 몰두하고 있다.
“울산의 누구는 운동장이 폭신해지라고 소금을 뿌리는 대신 직접 트럭을 빌려와 바닷물을 공수해 뿌려요. 또 어떤 분은 경기 도중 후보들이 대기할 때 기타 연주를 해요. 자신의 취미를 남과 함께 즐기고자 스스로 노력하는 분들이죠. 이런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더 쉽고 편한 환경에서 할 수 있게끔 돕고 싶어요. 프로야구 1억 관중 시대예요. 이런 인기 스포츠가 건강한 경쟁력을 갖추려면 리틀야구, 사회인야구 등 생활체육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우리 연합회는 이런 일에 앞장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포츠 경쟁력은 생활체육”
사회인야구단 ‘마당놀이’의 일원이기도 한 성 회장. 운동장에서 만난 그는 한층 더 밝아보였다. 마당놀이는 이십대 후반부터 오십대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야구를 즐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소속한 선수들도 있다. 이들은 코치가 분석한 상대팀 데이터를 숙지하고 싸인을 외우며 작전을 연습한다. 다른 사람들의 경기를 보며 자신의 기술을 연마하기도 하고 단체로 야구교실을 다니기도 한다. “얼마나 좋으면 직장인들이 황금 같은 휴일에 나오겠습니까? 마음만은 프로 못지않습니다. 또 운동이 아니면 어디서 이런 형님․동생들을 만나겠어요? 실버야구단 분들 만나보면 다들 그러십니다. 팀이라서 좋다고. 나이가 더 들어도 이렇게 팀원들과 같이 야구하는 것, 그게 가장 큰 바람이죠.”
전사연이라는 이름 때문에 뭔가 거창하게 내세우는 사람이 아닐까 했다. 직접 만나본 성광모 회장은 그저 야구가 좋아 움직이는 열혈남아였다. 그의 바람대로 6,70대가 되어 야구장에서 배트를 휘두르는 그를 볼 수 있길 응원한다.
배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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