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날씨가 일시적으로 쌀쌀했지만 그래도 올 봄 날씨는 전반적으로 매우 따뜻한 편이다. 그래서 서울 벚꽃이 3월에 피었는데 이는 92년 만이다. 올해 봄 꽃은 왜 이렇게 서둘러 피었을까.
대부분의 식물은 꽃 피는 시기를 조절하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대기의 온도, 햇빛, 강수량 등을 감지해 꽃 피는 시기를 앞당기거나 늦추는 유전자는 수십 가지가 된다. 안지훈 고려대 생명과학과 교수팀은 기온 20도 이하에서 개화를 앞당기는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고 반대로 개화를 늦추는 역할을 하는 단백질(FLM)을 발견해 지난해 미국의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식물이 대기 온도 변화에 따라 꽃 피우는 시기를 조절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처음 밝힌 것이다.
안 교수는 이번 봄의 이른 개화와 관련해 "아직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봄 꽃 체내에서 이와 유사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2, 3월 기온이 예년보다 높았고 이를 식물 체내의 대기 온도 감지 단백질이 인식해 개화 시기 조절 유전자가 꽃을 일찍 피우도록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그러나 꽃피는 시기가 이 같은 유전자의 작용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영양분을 분해, 성장이나 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드는 대사작용 역시 큰 영향을 미친다.
봄 꽃의 개화에는 다른 계절 식물의 그것에 비해 대사작용이 더 많이 관여한다는 설명도 있다. 이일하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개화 조절 유전자는 꽃눈이 형성되기 이전 단계에서 주로 작동한다"며 "봄 꽃은 가을이나 겨울에 이미 꽃눈을 만들기 때문에 올 봄의 이른 개화에는 유전자보다 대사작용이 더 많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2, 3월의 이상고온이 봄 꽃의 물질대사를 촉진했고, 꽃눈 단계에 머물던 조직에서 세포분열이 활발해지는 등 식물이 더 빨리 자라 일찍 꽃을 피웠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올 봄 이른 개화는 식물 특유의 생존전략을 여실히 보여준다. 안 교수는 "동물은 태어날 때부터 발달 과정이 프로그램화해 스스로 변화시킬 수 없는 반면 식물은 환경 변화에 따라 자신의 발달 과정을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다"며 "환경이 바뀌었을 때 동물은 자유롭게 이동하는 운동성을, 식물은 발달을 조절하는 유연성을 각각 생존전략으로 택해 진화해왔다"고 설명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