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30> 유별난 재즈 밴드 '퀸터플랫'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30> 유별난 재즈 밴드 '퀸터플랫'

입력
2014.04.06 11:14
0 0

● 재즈로 똘똘 뭉친 선후배'1세대 드러머' 임헌수씨 등일주일에 30개팀 공연하는클럽서 평균 연령 가장 높아● 연령 차이만큼 다양한 음악다른 팀들과는 대조적으로멤버들이 가진 개인 작품을공연마다 소개하도록 배려● 한국 재즈의 본질적 고민양적·질적으로 발전했지만연주자들의 생활 늘 힘들어순수하게 꿈 좇던 후배들이생활을 선택할 땐 안타까워

재즈를 주제로 평론과 만화 작업을 하는 남무성씨는 2010년 나온 영화 '브라보! 재즈 라이프'의 감독ㆍ제작ㆍ편집자이기도 하다. 쿠바의 재즈 노장들을 소재로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2005년에 만들었던'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의 한국 버전을 작심하고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다.

작품이 나오기까지 최대의 공신으로 그는 열일 제쳐두고 촬영에 협조한"선생님들(한국 재즈 1세대)"을 가장 먼저 꼽았다. 최고 연장자였던 드러머 조상국 씨가 촬영을 코앞에 두고 작고했지만 튼실한 재즈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조윤성이 출연해 아버지의 몫까지 다 해냈다. 앞서 세상을 뜬 드러머 최세진씨는 영상으로 처리했다. 기꺼이 협조한 원로 재즈맨들은 촬영이 끝나면 낮술, 고집, 다툼, 화해 등 해프닝을 쉼 없이 연출했지만 그들의 행동에는 '인간적인 맛'(人間味)이 짙게 배어 있었다고 남씨는 돌이켰다.

'신생' 재즈 밴드 퀸터플랫(Quinterflat)은 그 맛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유별난 악단이 될 것이다. 세대간의 대화는커녕 협업마저도 철 지난 얘기가 돼 버린 지금, 재즈라는 계기를 빌어 노소동락 하는 그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젊은 문화의 해방구'홍대앞'의 외곽 지역으로 부상 중인 합정역 바로 뒤의 재즈 클럽 '재즈다'(Jazzda)에서 그들은 이 시대 문화 생성의 새로운 준거틀을 자임하고 있다. 손님 대부분이 골수 재즈팬 아니면 뮤지션인 이 곳에서는 우선 그들의 귀를 만족시켜야 한다.

야누스, 원스 인 어 블루문, 천년동안도, 쟈스, 에반스, 팜 등과 함께 "재즈만 하는" 클럽인 이 곳은 재즈 1세대와 젊은 재즈맨들이 나란히 협연하는 귀한 모습을 제공한다. 임헌수(66ㆍ드럼) 임민수(55ㆍ비브라폰) 형제, 김예중(40ㆍ트럼펫), 송미호(37ㆍ베이스) 등 멤버들이 모였다. 한 식구처럼 지내는 장정미(40ㆍ보컬)씨가 소식을 듣고 달려왔지만, 박선영(기타) 곽지웅(드럼)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얼굴을 내밀지 못 했다.

정규 멤버는 아닌 장정미씨는 임민수씨와 음악적으로 동지다. "10여 년 전 정미가 여성 로커로 활동 중일 때 나는 그 밴드 멤버였죠. 올 하반기에 (우리가 함께 만든)음반도 낼 거에요." 그는 분당에서 도예가 남편과 함께 그릇을 전시ㆍ판매하는'이목동그릇'을 운영하면서도 재즈 가수에의 꿈을 놓지 않고 있다. 소싯적, 진보적 재즈에 관심 많았던 그는 작고한 프리 재즈의 거장 김대환씨의 음악 실험에 동참한 이력도 갖고 있다.

두 세대를 아우르는 재즈 악단 퀸터플랫의 면면은 언뜻 종잡을 수 없는 듯 하지만 재즈에의 꿈으로 포개진다. 현재 이 클럽에는 1주일에 30 개 팀이 무대에 선다. 평균 연령으로 치면 당연히 이 팀이 가장 높다. 그러나 연령 차만큼이나 다양한 음악성이 공존, 가장 창조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연소자인 송미호를 리더로 내세운 것이 모양새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카리스마와는 거리 먼 인간인데 팀원들이 나를 내세웠죠."바로 인간미 때문이다. 그는 각각 자신의 작품을 갖고 있는 멤버들에게 매 공연당 두 곡씩 소개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기타 재즈 팀들의 경우, 단원 개인의 이름이 부각되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다 보니 그룹을 자기 작품 발표의 장으로서는 활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평소 뒤에서 드럼만 열심히 치는 줄로만 알았던 임헌수씨, 영화 '브라보!'에도 출연했다. 그의 회상에서는 재즈 1세대로 감내해 온 세월이 드러난다. "자상한 최세진으로부터 많이 배웠는데, 조상국은 19살 때 미 8군 무대에서 인연을 맺었죠." 작고한 선배들을 떠올리며 그는 "트롬본으로 거장 글렌 밀러 뺨치는 명 연주를 펼쳤던 홍덕표가 아직 눈에 선하다"고 했다. 세 사람 모두 스타 기질이 다분해, 쇼맨십은 객석이 덤으로 누렸던 즐거움이었다.

그는 한국의 1세대 재즈맨들과 최근까지도 무대를 가졌다. 신관웅(피아노), 김수열(색소폰), 이동기(클라리넷), 최선배(트럼펫), 김준(보컬), 장응규(베이스), 유복성(타악) 등과 지난해까지 무대에 섰지만 이제 후배들한테 물려주고 행사의 초청 연주 위주로 활동 중이다. 가까이는 3월 21일 노원 문화예술회관에서 가수 장사익, 전자 바이올린 주자 유진박과 무대에 섰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동료 악사들과 함께 벚꽃놀이도 다녀왔다. "실컷 자 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요즘은 8시간씩 자요. 바쁠 때는 너 댓 시간이 고작이었죠. 늘 바빴고 늘 피곤했는데…."

그 덕에 오늘날 '한국 재즈'가 존재한다. 문제는 이 시대, 음악으로서의 재즈다. 그들은 다양한 위상 차를 보였다.

"한국에 재즈가 알려지기 시작한 20~30년 전보다 확실히 양적 질적으로 발전해 흐뭇하지만 연주 공간이 부족하다." 임헌수씨의 걱정이다. 따라서 발표의 기회가 제한될 뿐더러 연주자들의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재즈에 푹 빠져 살고 싶다는 젊은이들에게 하는 말이 있다. "취미에서 그치라"는 것. "그런데 말 안 들어요. 하긴 나부터도 그랬으니…."

곰곰이 듣고 있던 리더가 한마디 한다. "나는 그 의견에 반대한다. 재즈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연주인들이 많이 늘어났지 않느냐." 전통적 의미에서 공간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재즈에 관심과 재능을 가진 요즘 후배들은 안타깝게도 생활을 택한다. 현실과 경제에 쫓겨, 순수하게 꿈을 좇는 젊은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

어머니가 된 장정미씨. "결혼 이후 10년의 공백을 거쳐 이제야 컴백한 아줌마"라며 단서를 단다. 우리 재즈의 저변이 확대됐으며 "재즈 팬의 9할은 안목이 분명히 높아져 객석의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킨" 현실을 먼저 이야기했다. 그가 지적하는 문제는 재즈의 주체다. "반대로 재즈 뮤지션의 상황은 10년 전보다 더 열악해요. 옛날에 비해 뮤지션끼리의 단합도 안 되죠." 과거 한국재즈클럽(KJCㆍKorea Jazz Club)같은 친목의 수준을 넘어선 실질적 협회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것. 예술적ㆍ사회적 실체로서 재즈 뮤지션들이 소리를 낼 때가 됐다는 말이다.

선배로서 임헌수씨는 할 말이 많다. 그는 10여 년 전 재즈 피아니스트 나나 존스가 내한해 가졌던 TV인터뷰에서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한 말을 상기시켰다. "재즈를 하고 싶다면 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할 각오를 하라. 그리고 하루에 10시간은 재즈만 하라." 송곳 같은 말이다. 재즈의 진실이다. 임씨는 "내가 재즈와 조우한 것은 20대 들어서 미 8군에서였다. 그냥 좋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23세에 결혼해 "먹고 살려다 보니" 재즈와 멀어지게 됐다.

1980년대 한국 최초의 재즈 클럽 야누스가 생겼다는 소식에 "거길 기웃거리다 보니" 1988년, 기회가 왔다. 이태원의 클럽 올댓재즈 무대에서 활동하던 드러머가 갑자기 결석하는 바람에 당시 신예였던 이정식(색소폰), 이영경(피아노)과 예기치 않은 무대를 가진 것이다. 결정적 계기는 이어 가진 오사카의 재즈 클럽 블루노트 공연이었다. 당시 일본의 세계적 재즈 트럼펫 주자 히노 테루마사(日野皓定)와 그 밴드의 연주를 코앞에서 확인하고, 그는 충격을 받아 입에 대지 않던 술을 마셨다(그는 독살한 크리스천이다). 그리고 "독하게" 연습하기 시작했다.

클럽 대표여서 재즈맨들의 속내에 빠삭한 김예중씨는"요즘 재즈맨들에게 실질적 연주 공간이 늘었다"며 새 풍속도를 보였다. "홍대 앞에는 팜, 에반스 같은 전문 재즈 클럽 말고도 재즈를 위한 작은 무대를 만들어 자리를 제공하는 일반 카페들이 낯설지 않다." 새로운 형태의 수요가 창출된 셈이다. 재즈맨들로서는 (악기를 들고 이동하는 것이)힘들지만 그것 또한 재미있는 일로 받아들인다는 것.

임헌수씨, 약간은 비장해지기로 마음 먹었나. 그는 "재즈의 상황은 30년 전과 똑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재즈 팬은 한정돼 있다. 연주자들의 생활은 늘 힘들다. 실용음악과 강단에 설 수 있다면 복이다." 문제는 졸업생들이다. "100 대 1까지 가는 경쟁률이지만 정작 교문을 나서면 뭐 할건지…. 클래식은 국공립 단체ㆍ지자체 등등이 흡수하지만." 조금 더 듣다 보면 그의 속내에는 보다 본질적인 고민이 있음을 알게 된다. "또 하나, 재즈는 '절대' 대중 예술이 아니라는 데 진정한 문제가 있다."대선배로서 그는 본질을 말하고 있었던 것일까.

이 지점에서 기자는 오래 전 읽은 유하 시인의 시 '재즈'를 떠올렸다. "운명이여 나를 내버려 두게나 / …(중략)…/연주할 수 있는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 / 그게 삶을 끌고 가는 유일한 힘일지도 몰라." 중간 부분에 "계획되고 요약, 정리될 수 있는 인생이란 애초에 없었던 거야"라는, 위악적 허무의 낌새도 감지된다. 그조차도 재즈, 나아가 예술의 일부일지 모른다.

경영난에 허덕이다 결국 지난해 문을 닫은 재즈 클럽 문 글로우(Moon Glow)와 관련한 뒷소식을 전하는 임헌수씨의 말은 그 무상함을 문득 상기시켰다. 지난해 한 방송사의 다큐멘터리 전문 감독이 3D로 1세대 재즈맨들을 담은 영화 'Moon Glow Lives'를 만들었다. "그러나 개봉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아직 나타나지 않아 1세대 재즈맨까지 초조하게 만들고 있군요."

시류와 세파에 쫓겨 '진짜 재즈'는 원래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퀸터플랫과 재즈다는 상투화해 버린 재즈가 잃어버린 꿈을 찾아 나섰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