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따뜻해져 자주 산책을 나갔다. 미세먼지 때문인지 돌아올 즈음엔 늘 목이 아팠다. 그래서 며칠 전엔 마스크를 챙겼는데, 문을 나서려니 오후의 햇볕이 또한 만만치 않기에 서랍을 뒤져 선글라스도 꺼내 썼다. 그렇게 중무장한 얼굴로 추리닝 바지에 손을 찔러 넣고 느릿느릿 걸어 다녔다. 마주치는 사람들이 자꾸 힐끗거렸다. 뭐야 뭐. 눈과 목을 보호하자는 것뿐인데. 괜한 자격지심에 나도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힐끗 해 보니, 가관이긴 했다. 흰 마스크에 검은 선글라스. 마침 앞머리까지 덥수룩이 내려온 터라 얼굴에 빈 공간이 없었다. 빈집을 털러 나왔으면 이럴까. 아니면 안면 전체를 뜯어고친 흉터가 아물지 않았거나. 아무려나 산책을 나왔다기엔 수상쩍은 모습. 하지만 올 봄 날씨만큼 수상쩍기야 할까. 습한 것도 아닌데 햇볕은 흐리멍덩하고 바람은 무겁다. 매캐하고 따뜻한 공기 속에서 꽃들은 전쟁을 치르듯 허겁지겁 피고진다. 답답해진 건 마스크 안에 날숨이 고이고 선글라스가 풍경의 명도를 낮추었기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먼지와 훈풍이 이렇게 해마다 수상쩍어지다간 언젠가 다들 부르카를 뒤집어쓴 아프가니스탄 여자들 차림새로 활보하게 될 것도 같아서. 방독면을 사이좋게 나눠 쓰고 봄나들이를 즐기게 될 것도 같아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중국의 산업화가 주된 원인이라 한다. 중국산 물건을 싸게 사는 대가로 우리는 맑은 봄날을 지불하고 있는 것일까.
신해욱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