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과 듀폰 간 영업비밀침해소송에서 미국 2심 법원이 코오롱의 손을 들어줬다. '애국심 판결'이란 얘기가 나올 만큼 일방적으로 듀폰에게 승리를 안겼던 1심 판결을 무효화시킨 것인데, 이로써 코오롱은 1조원 배상위기에서 벗어나게 됐다.
미국 버지니아주 소재 제4순회 연방항소법원은 3일(현지시간) 듀폰이 '아라미드'와 관련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코오롱인더스트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듀폰의 손을 들어준 1심 판결을 깨고 재심을 명령했다. 연방항소법원은 우리나라 고등법원에 해당하는 2심 재판부다.
연방항소법원은 1심 판결이 코오롱 측의 주장과 증거가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사건을 되돌려 보냈다. 이에 따라 1심을 맡았던 버지니아주 동부법원은 이 사건을 다시 판결하게 되는데, 새로 구성되는 재판부가 심리를 맡는다.
아라미드는 1970년대 초 미국의 화학회사인 듀폰이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합성섬유다. 총알도 뚫지 못하는 강도, 섭씨 500도에서도 타지 않는 내열성, 웬만한 힘에도 늘어나지 않는 인장강도를 가져, 방탄 재킷이나 헬멧, 군수물자, 골프채 등에 쓰인다. 때문에 세계 각국이 개발에 열을 올렸고 한국에선 1985년 한국과학기술원(KIST) 윤한식 박사팀이 코오롱의 지원을 받아 개발했다.
이 시장은 듀폰과 일본 화학회사 데이진이 양분하고 있었는데, 2005년 코오롱이 '헤라크론'이라는 브랜드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듀폰은 퇴사한 엔지니어를 코오롱이 고용해 아라미드에 관한 영업비밀을 빼냈다며 2009년 2월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을 맡은 버지니아 동부지방법원은 2011년 11월 코오롱의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 손해배상금으로 9억1,990만달러(약 1조120억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이듬해 8월엔 헤라크론에 대해 20년간 생산 및 판매금지 명령까지 내렸다. 다행히 코오롱 측의 긴급 집행정지 요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져 생산라인은 하루 만에 가동됐지만, 코오롱측 증거와 주장은 배척된 채 일방적으로 듀폰측 입장만 반영한 '애국심 판결'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연방항소법원은 1심 재판부가 코오롱에 유리한 증거와 증언을 불공정하게 배제했다고 판단했다. 듀폰이 침해 받았다고 주장한 영업비밀은 아라미드 생산기술에 관한 것으로, 지난 1980년대 듀폰이 네덜란드 섬유회사 '악조'와 벌인 특허소송 과정에서 상당부분 공개됐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특히 재판을 맡은 로버트 페인 판사는 과거 아라미드 특허침해소송에서 듀폰쪽 변호인으로 참여한 사실이 있어 불공정한 재판을 우려한 코오롱이 재판부 기피신청을 했지만, 페인 판사는 이조차 기각했다.
코오롱 관계자는 "1조원의 징벌적 손해배상금, 향후 20년간 아라미드의 생산 마케팅 유통 등을 금지한 조치가 이번 결정으로 모두 무효화된 것"이라며 "그간 소송으로 위축됐던 북미, 유럽 등 해외 영업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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