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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는 삶

입력
2014.04.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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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없는 삶은 가능할까.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엔 도시문명을 떠나 산 속으로 거처를 옮긴 소위 '자연인'들이 등장한다. 산으로 들어온 사연은 질병, 사업실패 등 다양하지만, 현재 삶은 비슷한 구석이 많다. 그들은 대부분 전기 없이 산다. 전구 대신 초를 밝히고 냉장고 대신 항아리에 음식을 담아 샘이나 개천에 넣어 보관한다. 전열기 대신 장작을 패 군불을 때고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를 즐기는 대신 책을 읽는다. 전봇대가 집 바로 옆에 서 있어도 전기를 끌어들이지 않는다.

불편하지 않느냐는 물음엔 그저 웃는다. 전기가 없으니 스스로 힘을 내는 수밖에 없다. 땀 흘려 텃밭을 일구고, 벌을 치고, 눈 덮인 산비탈을 파헤쳐 약초를 캔다. 바쁘게 몸을 놀리다보니 병도 낫고 마음도 평안을 찾았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산 속 생활이 행복하진 않다. 몸 놀리기를 싫어하는 도시인에게 전기 없는 삶은 곧 지옥과도 같으리라.

후쿠시마 3주기를 맞이하여 핵에 관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분석부터 탈핵을 향한 구체적인 대안까지 다양하다. 그 중에서 특히 김익중 교수의 은 대중강연에 바탕을 두었기에 이해하기 쉽고 사례도 풍부하다.

이 책에 의하면, '영원한 숙제'라고 강조되는 핵폐기물이 역시 가장 큰 문제다. 고준위 핵폐기물의 저장 기간은 최소한 10만년이다. 10만년이란 기간이 우선 놀랍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도 반만년 그러니까 5,000년을 넘지 않고, 고려나 조선 같은 왕조도 500년을 지속했을 뿐이다. 나라가 바뀌고 지형지물이 달라져도, 위험한 핵폐기물이 안전하게 보관되리란 기대는 어디에 근거하는 걸까. 후쿠시마에서 보듯 지진을 비롯한 자연재해의 위력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10만년이란 기간은 각종 걱정을 낳는다. 가령 1만 년 후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바뀔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준위핵폐기장의 위험을 경고할 그림을 정하는 것부터 문제다. 또한 그 그림은 10만년 동안 지워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10만년 후에 인류가 생존하긴 할까.

탈핵에 관한 신간만 읽다보니 친핵의 논리도 궁금해졌다. '판도라의 약속'(Pandoras promise)이란 다큐멘터리는 반핵 활동가 중 친핵으로 돌아선 이들의 주장을 다룬다. 후쿠시마 사고 소식을 듣고 직접 현지를 방문하는 것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체르노빌 사고로 죽거나 다친 사람들의 숫자가 과장되었다는 주장을 펴던 그들에게도 후쿠시마 참사는 충격이었던 것이다.

후쿠시마에 다녀온 후에도 친핵론자들은 입장을 바꾸지 않는다. 인류는 전기에너지를 더욱 많이 필요로 하며, 그 에너지를 손쉽게 얻는 방법으론 핵 발전이 최선이란 것이다. 또한 화력발전이 지구온난화를 가중시키는데 반하여 핵 발전은 기후 이상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논리다. 10만년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문제는 여전히 남지만, 계속 증가하는 에너지 사용량에 발맞추기 위해선 핵발전소를 늘렸으면 늘렸지 줄여선 안 된다는 결론이다.

지난 1월 14일 우리 정부는 '제2차 국가에너지 기본 계획'을 통해 핵발전소 증설을 결정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현재 가동 중인 23기의 원전이 2035년에는 최대 41기까지 늘어날 것이다. 핵발전소 폐쇄를 통한 탈핵의 점진적 추구가 아니라 핵발전소 증설을 통한 전기에너지의 안정적 확보가 기본 정책 방향이다.

여름마다 전기 사용량이 급증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은 전기 없인 못 살겠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인류가 전기에 주목한 기간은 겨우 200년 남짓이다. 전열기를 트는 대신 방한에 용이한 두꺼운 벽으로 집을 짓고, 24시간 번쩍이는 간판들을 인적이 드문 시간에 소등하게 한다면? 태양을 비롯한 재생가능 에너지를 통해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나간다면?

인류가 모두 전기 없는 삶으로 회귀할 순 없지만, 모든 삶을 전기에 기댈 필요도 없다. 나는 얼마나 전기에 의지하고 사는지, 전기 없는 숲에서 반나절이라도 보냈던 적이 언제인지 짚어보는 식목일 아침이다.

김탁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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