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난 지금,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도망쳐 나온 난민들은 열악한 시설의 난민촌에서 고향에 돌아갈 날을 기약 없이 기다리고만 있다.
시리아에서 넘어온 난민들로 요르단 자타리 난민촌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난민촌이 됐다. 이곳의 난민들은 자신의 집과 마을이 파괴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고 일부는 가족들이 폭력에 희생되는 것을 지켜본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전쟁의 고통으로 어둡기만 했던 난민촌에 최근 셰익스피어의 무대가 펼쳐졌다고 뉴욕타임스와 레바논의 영자지인 데일리스타가 보도했다. 100여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한 연극이었다.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리어왕'을 다른 작품들의 대사를 섞어 각색한 것.
태양이 내리쬐는 공연 당일, 12명의 주연 배우들이 무대에 섰다. 지저분한 청바지와 집에서 만든 망토를 두른 리어왕이 나무로 만든 권장을 쥐고 서있었다. 그를 사이에 두고 거짓된 충성심을 보이는 두 딸과 유일하게 진실된 막내딸이 열연을 펼쳤다. 리어왕의 "죽느냐 사느냐(To be or Not to be)!"는 대사를 끝으로 공연은 막을 내렸고 곳곳에서 관객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 곳의 아이들이 처음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미 실제론 그보다 더한 비극을 겪은 아이들이지만.
공연 감독을 맡은 나와르 불불(40)은 자타리 난민촌에 웃음과 즐거움을 전해주고 인류애를 불러 일으키기 위해 기획된 공연이라고 뉴욕타임스에 밝혔다. 그는 시리아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 아랍권에서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바브 알하라'로 잘 알려진 배우였다. 2011년 1월 시리아 폭동이 터지고 그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는 더 이상 공연을 할 수 없게 됐다. 한 동료는 그가 신념을 바꿔 드라마에서 계속 연기를 하거나, 아님 체포 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생각해보겠다고 얘기한 뒤 한 주 후에 시리아에서 빠져 나왔다.
그는 작년에 부인과 함께 요르단에 왔다. 자타리 난민촌에서 구호 물품을 나눠주는 일을 도와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난민 캠프를 찾은 그는 전쟁이 초래한 참상을 목격했다. 그는 "처음 왔을 때, 난민촌의 어린이들은 탱크, 총알, 폭탄과 같은 전쟁 용어를 쓰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 후 그는 다시 자타리 난민 촌으로 돌아왔다. 세상에서 가장 불운한 자타리 난민촌에 세계 최고의 극장이 들어서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아이들에게 흥미를 줄 수 있을 공연이 무엇일지 고민했다는 그는 '리어왕'을 선택했다.
유엔에 따르면 요르단 난민촌에 있는 58만7,000명의 난민들 중 절반 이상이 18살 이하다. 그 중 6만여명이 자타리 난민촌에 있으며 이 중 4분의 1도 안 되는 아이들만이 학교에 다니고 있다. 부모들과 국제 구호원들은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전쟁에 상처 입은 아이들이 '잃어버린 세대'가 될까 두려워했다. 감독은 아이들이 전쟁이라는 어른들의 더러운 게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린이들은 전쟁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언제나 뼈아픈 대가를 치르는 이들은 아이들"이라며"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과학, 예술, 음악을 배우며 자라야 한다."고 말했다.
배우들은 대부분 15세 이하의 어린이들이다. 상당수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와 데라 주에서 왔다. 리어왕을 연기한 마흐드 아마리 역시 작년 데라 주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 곳으로 왔다. "연극을 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커서도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리어왕의 첫째 딸을 연기한 13살의 부슈라 나쉬르는 "연극은 우리에게 즐거움을 준다"며 "이는 자타리 난민촌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녀는 작년에 7명의 남매들과 함께 요르단에 왔다. 처음에는 정통 아랍어로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그녀는 "지금은 익숙해졌고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며 "이제 이곳에서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공연을 관람한 가족들 역시 아이들의 공연에 감격해 했다. 리어왕의 딸을 연기한 로완의 아버지 하템 아삼은 "딸이 어려운 상황에서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에서 아이들끼리 어울려 다니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나쁜 버릇이 들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 그는 마을에서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딸에게 기회를 주었다.
감독은 "내게 아이들은 진정한 혁명가들"이라며 "자타리의 중심부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공연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다른 형태의 혁명"이라고 말했다.
우한솔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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