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노역'으로 공분을 샀던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이 여론의 집중 포화와 은닉 재산 찾기에 사활을 건 검찰의 협공에 결국 백기를 들었다. 벌금 낼 돈이 없다며 버티던 그가 검찰이 지난달 26일 노역을 중단시키고 벌금 강제 집행을 위해 가족과 측근들을 강하게 압박해 들어가자 남은 벌금(175억2,700여만원) 전액을 내놓는 길을 택한 것이다. 2010년 1월 항소심 재판부의 일당 5억원짜리 노역 판결 이후 4년 3개월 만이다.
그러나 허 전 회장의 백기투항에도 불구하고 성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어 파장이 계속될 전망이다. 허 전 회장은 4일 오후 사과문 발표 직후 차를 타고 광주지검 청사를 빠져 나가려다 경기 용인시 공세지구 대주피오레 아파트 분양 피해자 10여명에게 막혀 2시간 가까이 차에 갇혀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짜증스런 어투로 "국민에게 사과하러 왔는데 사과도 아니고 뭣도 아니게 됐다. 함정에 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다. 대국민 사과도 쇼였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검찰은 허 전 회장에게서 벌금 납부계획서를 받아내는 성과를 내고도 되레 역풍을 우려하고 있다.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허 전 회장 발언에 대한 비난 화살이 검찰로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2008년 9월 508억원의 탈세를 지시한 허 전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1,016억원을 구형하면서 벌금에 대해서는 재판부에 선고유예를 요청했다. 이후 항소심에서 일당 5억원의 '황제 노역' 판결이 났는데도 이를 바로잡을 기회인 상고마저 포기했다. 특히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숨은 재산 추적을 사실상 포기한 채 지난달 22일 뉴질랜드에서 귀국한 그를 바로 노역장에 유치했다. 이 때문에 "검찰의 봐주기 수사, 봐주기 구형이 이번 사태의 단초가 됐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검찰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검찰은 이날 "허 전 회장이 벌금을 완납할 때까지 재산 추적을 계속하고 차명주식 보유와 배임ㆍ횡령 의혹 등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를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의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벌써 검찰 주변에선 허 전 회장이 벌금을 완납하면 그때까지 확인된 불법 행위에 대해서만 사법처리를 하고 수사를 매듭지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허 전 회장의 비리 의혹을 끝까지 파헤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런 조짐은 지난 2일 "모든 (검찰)조사는 벌금 집행을 위한 것으로 허 전 회장이 벌금을 내면 끝나는 것 아니냐"는 변찬우 광주지검장의 발언에서도 읽힌다.
검찰 관계자는 "허 전 회장 측이 국민들께 구체적인 벌금 납부 계획을 밝히고 완납의지를 표명한 만큼 순조롭게 벌금을 집행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벌금 완납 시점에서 다른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 계속 여부는 그 때 가서 판단하겠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