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달 초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 있는 안중근 기념관에 대표단을 보낼 방침인 것으로 3일 확인됐다. 개인 자격이 아닌 정부 차원의 첫 공식 방문이다. 지난 1월 기념관 개관 이후 일본이 온갖 막말을 쏟아내며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이번 조치가 한일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박승춘 보훈처장(차관급)을 단장으로 외교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부처 인사들로 구성된 10명 가량의 대표단이 5월 초 안중근 기념관을 찾는다. 정부는 청와대에서 최근 합동준비단 회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에서는 일부 신중론도 제기됐지만 청와대가 강력하게 대표단 파견을 주문했다고 한다.
정부는 당초 안중근 의사 순국일인 3월 26일에 맞춰 기념관에 대표단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다만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대표단의 기념관 방문 시점을 늦춰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안중근 의사를 계속 매도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기념관 방문을 미룰 이유가 없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은 지난 1월 안 의사를 테러리스트로 폄하하더니 지난달에는 테러리스트 기념관이라고 깎아 내리는 망언을 했다.
한편으론 지난해 6월 한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기념관 건립이라는 깜짝 선물을 한 만큼 우리 정부도 성의를 표시해야 한다는 점이 고려됐다. 당시 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안중근 의사의 저격을 기리는 표지석 설치를 요청했는데 시진핑 국가주석은 예상치 못했던 기념관 건립으로 화답했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지난달 23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안중근 의사는 양국 우호협력과 국민 감정을 돈독히 하는 상징물이 되고 있다"며 우의를 과시했다.
이처럼 정부 의지는 확고하지만 대표단의 방문 시점을 이달 하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한일 양국 순방 이후로 잡은 것은 다분히 한미일 3각 공조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대표단의 방문은 지극히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라면서도 "여러 가지 정치적 요인을 두루 감안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앞서 새누리당 서청원, 민주당 이석현 의원 등 여야 국회의원 11명은 지난달 26일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기를 맞아 기념관을 찾았고 뤼순에서 열린 안 의사 추모식에도 참석했다. 그러나 당시 의원들의 기념관 방문은 개인 자격으로 이뤄졌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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