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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잡던 女형사, 노인 돌보미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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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잡던 女형사, 노인 돌보미 되다

입력
2014.04.03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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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 잡던 카리스마요? 하하, 우리 외로운 어르신들 지켜 드리고 말벗 해 드리느라 그건 잠시 잊었어요." 3일 오전 11시 강원 고성군 노인복지관 1층 강당. 백발이 성성한 노인 80여명 앞에서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 피해 예방법'을 설명하고 내려온 김화자(54) 강원 고성경찰서 수사과장은 "어르신들이 워낙 강연에 집중하셔서 살인범 잡으려고 잠복할 때보다 더 긴장됐다"며 소리 내 웃었다.

분홍빛 립스틱에 반짝이는 목걸이, 가슴엔 흰 장미꽃 브로치까지. 화려하게 꾸민 보통 중년 여성처럼 보이지만 김 과장은 3, 4년 전만해도 서울 일대 조직폭력배들을 벌벌 떨게 한 강력팀 형사였다. 국내 최초 여성 조폭 전담팀장으로 2006년 서울 강동경찰서에 근무할 당시 김 과장은 고의 교통사고로 보험사 등에서 수십억원을 뜯어낸 '신21세기파' 조직원 100여명을 일망타진해 그의 팀은 서울경찰청 조직폭력 베스트 수사팀으로 선정됐다. 이 일로 그는 2007년 TV 드라마 '히트'에서 배우 고현정이 연기한 '차수경 강력팀장'의 실제 모델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범죄현장에서 펄펄 날던' 그가 2010년 강남경찰서 강력팀장을 마지막으로 서울을 떠나 고향 강원도로 내려간 데엔 이유가 있었다. 김 과장은 "치매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구순(90세) 어머니를 도저히 요양원에 보낼 수 없어 고향에서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고향에 돌아온 김 과장의 눈에 들어온 것은 젊은 사람들이 다 서울로 빠져나가 노인들만 남아 있는 동네 모습이었다. 65세 노인인구 비율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강원도에서 김 과장의 주요 업무는 자연스럽게 '노인 치안활동'이 됐다. 매일 저녁 노인회관 등을 순찰하며 안전사고와 범죄 예방법 등을 설명하면서 바쁜 일정을 보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김 과장은 뜻밖의 비보를 접했다. 36년 전 가족과 연을 끊고 집을 나간 친 오빠가 부산의 한 쪽방에서 사망한 지 열 달 만에 백골로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월세가 밀려 보증금을 다 까먹고도 1년 동안 월세를 내지 않자 쪽방을 찾은 집주인이 오빠(당시 67세)를 발견한 것이다.

김 과장은 "'어떻게 사람이 죽어 1년 가까이 방치돼 있는데도 누구 하나 들여다 본 사람이 없었을까'하고 생각하니 슬픔보다는 기가 막혔다"면서 "이웃 노인이 혼자 쓸쓸히 죽음을 맞이해도 무심한 사회가 원망스럽기도 했고,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그때부터 김 과장은 순찰할 때마다 독거노인들이 사는 집을 일일이 찾아 다니며 말벗을하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안부전화를 하는 등 노인들의 고독사를 막기 위한 활동에 여념이 없다. 이날처럼 범죄예방 강연을 할 때는 마지막에 "어르신들, 외로우실 때는 저한테 꼭 전화해주세요"란 말을 잊지 않는다. 강원경찰청에서도 도내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자녀나 친인척 대신 경찰이 안전을 확인하고 그 결과를 알려주는 '홀몸어르신 안전확인 서비스' 등 고독사를 막기 위한 치안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매일 2, 3명의 독거노인들이 홀로 생을 마감해 김 과장은 일과 중 대부분을 변사 현장에서 보낸다. 하지만 김 과장은 포기하지 않을 생각이다. "'식사는 하셨어요?'란 말만 들어도 우울증에 덜 걸린다고 하잖아요. 어르신들 계속 찾아 뵙고 안부도 챙겨서 우리 오빠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해야죠."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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