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파주의 야산에서 청와대를 촬영한 카메라가 장착된 무인기가 추락했을 때는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했다. 1주일 후 북한이 서해 NLL 북쪽 수역에서 500여 발의 포탄사격을 하며 시위성 도발을 한 날 백령도 마을 한가운데에 다시 무인기 하나가 추락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이 무인기가 파주 추락 무인기와 함께 북한제로 밝혀져 온 나라가 들끓게 된 것이다.
남북한 간 실전에 가까운 포격을 벌이고 있을 때 백령도에는 어떤 민간 비행체도 비행이 허가될 수 없었다. 추락한 무인기가 북한제라고 신속하게 실체가 밝혀진 것은 그래서다. 북한이 포격 중에 무인기를 띄운 이유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우리 해병대가 가진 부족한 숫자의 K-9 자주포들은 엉뚱한 곳으로 대응사격을 하였고, 북한지역 해안의 절벽에 동굴을 파서 만든 해안포 진지들을 타격하기에는 불가능했다. 그 교훈으로 우리 군은 신속하게 K-9 자주포를 백령도ㆍ연평도 모두 18문씩 증강 배치하고, 북한군의 포격 원점을 탐지하여 정확한 반격을 할 수 있도록 '아서' 대포병 레이더를 도입했다. 해안포를 직격하기 위해 '스파이크' 대전차미사일도 배치했다.
백령도에 추락한 북한 무인기는 이렇게 새로 배치된 우리 전력들이 전시에 어디에 위치한 진지에서 작전하는지, 방어 장비는 어떻게 갖춰져 있는지 촬영하러 왔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 다음 공격 때는 그 진지의 좌표로 포 사격을 해서 대포병 레이더를 파괴하여 우리 포병의 눈을 멀게 만들고, 스파이크 미사일을 파괴해 해안포 공격능력을 상실시켜 버리는 등 엄청나게 유리한 전투를 할 수 있다.
그보다 더 큰 충격은 파주에 추락한 무인기도 북한에서 왔고, 그 안에는 청와대 상공 바로 위에서 선명하게 촬영한 사진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파주 무인기 추락 당일 모 언론 기자가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 무인기에는 DSLR 카메라가 내장돼 있는데 청와대를 찍은 사진이 들어있다며 견해를 물었다. 필자는 그 무인기가 북측에서 왔을 것이라는 사실보다 청와대 상공에서 비행하고도 들키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서울 강북지역 대부분은 비행금지구역이며 청와대 상공은 허가받지 않은 비행체는 이유 불문하고 격추하는 지역이다. 카메라 무게가 1kg은 될 텐데 그 정도면 사제폭발물이나 생화학무기를 탑재하여 대통령을 노린 테러도 충분히 가능하게 된다. 이런 우려를 표시하며 시급하게 작은 비행체도 탐지할 수 있는 레이더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하지만 이런 필자의 지적을 담은 기사는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필자에게 청와대 경호실이라며 전화가 걸려왔다. 대뜸"왜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함부로 말을 하느냐"고 했다. 그는"대공 용의점도 없고, 카메라에 담긴 사진은 구파발 지역쯤에서 찍어 청와대를 확인하기도 힘들 만큼 작게 나왔는데, 그걸 가지고 침소봉대하면 안 된다"며 "해당 기자에게 전화해서 기사를 삭제하든지 정정기사를 내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엊그제 그 카메라에 담긴 사진이 청와대 상공에서 정확하게 아래를 보고 찍은 사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필자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 평범한 소시민은 대한민국의 안보가 걱정되고 대통령의 안위가 걱정되어 기자가 묻지도 않은 말을 해주며 단단한 대비를 주문했는데, 대통령의 안위를 책임지는 경호실은 이를 통째로 덮으려 했던 것이다. 백령도에 무인기가 추락하지 않았다면 청와대를 정찰한 파주 무인기 사건은 흐지부지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 경호실을 소재로 요즘 방영 중인 TV 드라마의 주인공은 "내 목숨을 던져서라도 대통령의 목숨을 구해야 한다" 고 이야기하는데, 현실의 경호실은 대통령의 안위와 국가안보 보다는 자신들의 안보와 안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소형 비행체를 탐지할 수 있는 고출력의 전자식 레이더 도입이 시급하다. 하지만 그에 앞서 국가의 중추인 청와대에 근무하며 대통령을 모시는 공직자들의 애국심을 점검하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신인균 (사)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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