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웃고 들어가 울고 나오고 독일어는 울고 들어가 웃고 나온다고 한다. 이에 비해 러시아어는 통곡하고 들어가 통곡하며 나온다지만 러시아어가 한국인의 관심사가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영어와 독일어의 비교는 처음에 독일어 배우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걸 강조하는 이야기이다.
독일을 자주 여행한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독일어를 배우기 위해 꽤 노력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나 보다. 그는 라는 작품에 “독일 작가들이 문장 속에 뛰어들 때마다 그를 다시 보려면 입에 동사를 물고 대서양 건너편에서 다시 떠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썼다. 어떤 연설에서는 “나는 (하늘나라에 가서) 베드로에게 독일어로 설명하려고 애썼다. 명확하게 말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말도 했다. 독일어는 문장이 복잡하고 동사의 변화형 때문에 어렵다는 반감이 실린 말이다.
그뿐이 아니라 독일어는 명사마다 성이 있어 그걸 다 외워야 한다. 일정한 원칙은 있지만 이건 왜 남성이며 저건 왜 여성이나 중성인지 헷갈린다. 아버지(Vater)는 남성, 어머니(Mutter)가 여성인 건 당연하지만 왜 물(Wasser)이나 빵(Brot)은 중성인지 모르겠고, 치마(Rock)는 남성인데 바지(Hose)는 여성인 이유도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여성이 되면 세금, 중성이 되면 자동차 핸들, 언저리를 뜻하는 Steuer처럼 성이 바뀌면 의미가 달라지는 단어도 있다. 그래서 “독일어 명사의 성이 어떻게 붙여지는지 알려면 독일 영혼을 가져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좌우간 한국인들은 독일어를 배울 때 정관사 변화를 달달 외우는 것으로 공부를 시작한다. “데어 데스 뎀 덴, 디 데어 데어 디, 다스 데스 뎀 다스, 디 데어 덴 디”는 내가 다닌 대학 독문과의 과호이며 응원구호이기도 하다. 이걸 단숨에 죽 읊어대면 독일인들은 놀라 자빠진다. 그 복잡한 걸 어떻게 다 외우느냐는 거다. 그들이야 외울 필요도 없겠지만 일단 우리는 외우고 본다.
명사의 성별은 여성이 46%로 가장 많고, 남성 34%, 중성 20% 순이다. 이 중에서 한 단어가 의미에 따라 성이 달라지는 경우가 1.2%라고 한다. 여성명사가 이처럼 많은데도 여권이 신장되면서 명사에 붙이는 성이 여성 차별적이며 독일어는 공정하지 못한 언어라는 논쟁이 계속돼왔다. 남성을 이용해 여성이름을 표현할 수 있지만 반대의 경우는 인정되지 않는다. 여성에만 관계될 법한 말인데도 남성 대명사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고, 남성 형태의 단어에 말을 덧붙여 여성 형태를 만들지만 그 반대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독일 법무부는 독일 연방 국가기관은 반드시 ‘성 중립적인’ 언어를 써야 한다는 지침을 만들었다. 모든 국가기관의 문서에 ‘중성어’를 공식 표기토록 강조함에 따라 독일어는 큰 변화를 겪게 됐다. 교통법규에 지금까지 써온 Jeder(every man)라는 말이 남성형이라는 이유로 중성인 Wer(who)로 바꾸는 식이다. 지금까지 Wer는 구어체에서나 쓰는 말로 알려져왔다.
독일 대학에서는 지금 ‘학생들’이라는 단어 때문에 혼란을 겪고 있다. 교수가 학생들을 부를 때 남성형 복수명사인 ‘Studenten’을 사용해야 할지, 아니면 남성ㆍ여성 합성형 명사인 ‘Studentinnen’을 사용해야 할지 헷갈리는 것이다. 구인광고와 같은 공식 문서에서는 남성형과 여성형을 적당히 합친 ‘Student(inn)en’이나 ‘Studentinnen'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남성형을 원형으로 삼고 있어 불공정한 절충이라고 말이 많다.
대학측은 남성형 Studenten이 아닌 성별 구분 없이 ‘(공부를 하는) 대학 재학생’이라는 뜻의 ‘Studierende’를 사용해 성차별을 피해가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자 어떤 사람들은 누가 무차별 사격을 가해 대학생들이 많이 죽었을 때 “시민들은 죽어가는 대학생들을 보며 슬퍼한다.”가 아니라 “시민들은 죽어가면서 동시에 공부를 하는 그들을 보며 슬퍼한다.”고 말하는 꼴이 될 거라고 비아냥대고 있다.
원래 법률을 통해 문법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독일 북부에서 사용되는 저지 독일어에서는 남성관사 der와 여성관사 die를 구분하지 않고 de로 통일해서 쓰는 사례가 있다. 이런 식으로 독일어의 관사가 단순해질 거라고 전망하는 학자들도 있다고 한다. 외국인들로서야 변화를 지켜볼 수밖에 없지만 명사의 성이 단순해지면 독일어 배우기는 그만큼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다. 독일어의 시세가 40~50년 전보다는 못하지만 요즘 독일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독일어를 배우는 인구가 조금씩 늘고 있다니 하는 말이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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