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역 경찰서 간부가 규칙을 어기고 관내 사건을 제주로 이송했다가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에서 수억원을 사기 당한 피해자는 "경찰관이 '피의자가 있는 제주에 가서 조사를 받지 않으면 사건은 종결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기도 했다"며 수사 의지가 없는 경찰을 비난했다.
2일 서울 송파경찰서 등에 따르면 송모(39ㆍ서울 잠실동 거주)씨는 마카오 카지노 환전사업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속여 2억원을 가로챈 김모(57)씨를 올해 1월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2011년 10월 지인의 소개로 잠실동에서 송씨를 만나 "난 이미 10억원을 투자했다. 내 통장을 맡길 테니 6개월 뒤에는 투자금을 빼가도 좋다"며 안심시켰다. 송파구 일대에서 수 차례 투자 권유를 받은 송씨는 이듬해 2월 경기 분당에 있는 김씨의 사무실을 찾아가 돈을 건넸다. 그러나 모든 게 사기였다. 김씨는 돈을 받은 뒤에도 통장을 맡기지 않았고, 환전사업에 10억원을 투자한 적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맡은 송파서 신모 경위는 올해 2월 송씨를 1차 조사하면서 "7일 뒤 김씨와 대질신문을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신 경위는 신문 당일 돌연 "사건이 제주 서귀포경찰서로 이송됐으니 그리로 가서 조사를 받으라"고 송씨에게 통보했다. 줄곧 서울 명일동에서 살다가 고소를 당하기 전 서귀포로 주소를 옮긴 김씨가 사건 이송을 요청했다는 게 이유였다.
올해 1월 개정 시행된 '사건의 관할 및 관할사건 수사에 관한 규칙'은 형사소송법의 토지관할 기준(범죄지, 피고인의 주소지 순)에 따라 범죄지가 인정되면 관할 경찰서는 사건을 다른 경찰서로 이송할 수 없도록 했다. 이는 잦은 사건 이송으로 수사가 지연돼 불만을 낳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이 규칙을 알고 있었던 서귀포서가 지난달 7일 사건을 송파서로 되돌려 보내자 신 경위는 피해자와 피의자의 대질신문이라도 해달라며 서귀포서에 '촉탁 수사'를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신 경위는 피해자가 돈을 건넨 곳은 분당이라 범죄지가 모호하니 피의자 주소지로 사건이 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서귀포서 경찰관과 언성을 높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송씨는 "신 경위가 내 일정은 물어보지도 않고 대질신문일 닷새 전 '서귀포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라. 응하지 않으면 사건은 종결될 것'이라고 통보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죄를 지은 피의자만 지나치게 배려하는 데다 수사 의지도 없어 보이는 신 경위의 행동에 부아가 치민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이에 신 경위는 "이송해선 안 되는 줄 몰랐다. 피의자가 제주에서 조사받기를 원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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