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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과 서울시장

입력
2014.04.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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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예년보다 빨리 핀 벚꽃이 서울 하늘을 분홍빛으로 밝히고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꽃들이 만발하여 들뜬 마음은, 겨울 외투를 벗어 가벼워진 몸에게 봄나들이를 재촉한다. 한국에 온 후, 이즈음이면 항상 들리는 곳이 있다. 성북동의 간송미술관이다. 매년 봄 가을 간송미술관이 보름씩 문을 열면, 내겐 축제 같았다. 보통 1시간 이상 줄을 선 후에야 입장했지만, 무릇 축제는 기다려야 제맛인 법. 미술관 규모에 비해 방문객이 너무 많이 몰려서 관람 환경은 다소 불편했지만, 감상은 언제나 감동이었다. 알다시피 간송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은, 일제시대와 한국 전쟁으로부터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하여 수천 점의 전통 예술품들을 수집하고 지켜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오롯이 개인이 해냈으니 그 일의 힘듦과 소중함은 쉽게 짐작된다. 요즘 상황으로 치자면, 일본에 빼앗길 뻔한 독도를 혼자 지켜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간송 전형필을 문화재 독립운동가이자, 한국 정신문화를 지켜낸 국보급 인물이라 생각한다.

건물은 쓰임이 더 중요하다

우여곡절 끝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가 완공됐다. 설계공모 때부터 외양에 대한 뜨겁던 논쟁은 다시 불거졌다. '불시착한 우주선'으로 놀림감이 되는가 하면, 일부에서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리라 예상하고 있다. 그 모두를 기대와 관심으로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의 소모적인 논쟁은 그쳤으면 좋겠다. 논쟁은 발전을 지향할 때 가치 있다. 현재 서울의 도시풍경에는 꽤 낯선 외관이지만, 결국 건물은 쓰임이 중요하다. 따라서 서울시는 이 건물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몇 년에 걸쳐 DDP를 짓는 데 들인 천문학적 금액 이상으로 이곳을 가치 있게 이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제는 여기에 우리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때 경제성만을 내세워 DDP를 사용한다면, 옳지 않을 것이다. 공공성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선 성장 후 분배'의 말만 아름다운 논리에 빠져들어서는 안 될 듯하다. 이런 대규모 공사는 통장에 찍히는 돈의 액수만큼, 숫자만으로는 따질 수 없는 사회적인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예를 들어, 주변 동대문 시장의 환경을 고려하여 새벽까지 문을 여는 파격적인 미술관은 어떨까. 이것은, 서울 시장과 시민들이 함께할 일이다. 시장이 어떻게 하는 지 뒷짐 지고 두고 보지 말고, 시민들은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야 한다. 서울의 매력은 서울 시민이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서울 시장이 살펴야 할 것들

이 지점에서, 간송 전형필의 삶은 좋은 거울이 된다. 조선 시대 내로라하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간송은 자신의 부를 자신을 위해 쓰지 않았다. 모 방송 프로그램 녹화 때 만나 이야기를 들은 바로는, 전형우 간송미술관장이 회상하는 아버지 전형필은 항상 검소했다. 부자로 태어났으나 혼자만 부자로 살지 않았다. 부를 제 민족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사용했다. 한 개인도 그러했을진대, 21세기의 서울시가 돈만 따진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DDP의 개관전으로 를 채택한 서울시의 결정은 대단히 훌륭하다. 평소에 가 보고 싶었으나, 제한된 날짜로 직접 볼 수 없었던 많은 이들이 크게 반기고 있다. 역사책에서만 보았던 '청자상감운학문매병' 과 혜원 신윤복의 재미난 풍속화를 비롯한 100여 점의 작품은 낯선 공간에서도 제 풍모와 매력으로 아름답게 빛났다. 앞으로 3년 동안 간송미술관의 소장작들을 DDP에서 볼 수 있다니, 서양화에 비해 친해질 기회가 적었던 한국화와 가까워질 참 좋은 기회이다. 사극 드라마와 사극 영화에 이어, 우리 고유의 문화예술에 대한 붐이 생기길 기대한다.

건물 디자인은 모두가 만족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잘 사용한다면 서울 시민이 가장 사랑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그때, 경제성 등의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DDP가 서울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

이동섭 예술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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