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면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유신론자, 혹은 무신론자라면. 20세기를 대표하는 지식인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리처드 도킨스에 버금가는 무신론자다. 그에게도 어김없이 죽음의 그늘이 드리웠다. 2010년 식도암 말기 진단을 받자 유신론자들은 "히친스가 신성모독을 할 때 사용했던 부위에 암이 생긴 것이 우연의 일치일까"라며 공격했다. 히친스는 마지막 저서가 된 에서 "암은 성자든 죄인이든, 신자든 비신자든 공평하게 걸리는 병"이라고 코웃음 쳤다. 그는 1년 후 변함없는 무신론자로 생을 마쳤다.
■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소설가 최인호에게 신은 절대자였다. 암 진단을 받은 그에게 절망하고 분노하고 기도하고 희망을 갖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5년여의 투병 생활에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건 글을 못쓰는 허기였다. 탁자에 놓은 성모상을 껴안고 매일 엉엉 울며 기도했다. 글을 쓰게 해달라고. 마침내 항암치료로 빠진 손톱자리에 골무를 끼우고, 구역질이 나오면 얼음을 씹으면서 두 달 만에 유작이 된 장편 를 썼다. 투병기 에서 "누군가 불러주는 내용을 그대로 받아쓰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 '고집스러운' 자유주의자인 소설가 복거일은 2년 전 말기 암 판정을 받았지만 병원에 가지 않았다. 남은 날을 항암치료보다는 글 쓰는데 쏟고 싶었다. 최근 펴낸 자전소설 에는 운명을 맞이하는 두 가지 길이 제시돼있다. 개인의 정체성은 죽은 뒤에도 이어진다는 유신론자들의 낙관과 '나'란 존재는 유전자들을 한 세대 더 잇기 위해 쓰인 수레에 지나지 않는다는 절망이다. "절망의 길도 마음의 평정을 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는 그는 후자를 택한다.
■ 죽음을 앞두면 '파스칼의 도박'(신에게 믿음을 걸면 모든 것을 얻지만 믿지 않았다가는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이론)은 누구에게나 부닥치는 갈등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길을 택할 것인가. 스스로 끊임없이 부딪쳐서 해답을 찾아야 할 각자의 몫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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