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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대학들 의미 없는 순위 경쟁… 우수한 인재 키우는 데 집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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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뷰] "대학들 의미 없는 순위 경쟁… 우수한 인재 키우는 데 집중해야"

입력
2014.04.01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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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 옳고 그름 따지고'생산성·효율'이 놓치고 있는인간의 본질을 대학이 물어야국내 대학들 '평가 노이로제'논문 수 등 서열 매기기보다가치 중심적 평가지표 도입을전공 중심 교육서 탈피다른 분야와 소통 확대 필요교양과정 비중 더 늘려야

'대학의 위기'는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로 등장했다. 한 나라의 인재 양성과 문화 계승의 메카인 대학의 역할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대학들도 꽤 된다.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입학정원이 고교 졸업정원을 크게 초과하는 정원 역전현상이 몇 년 뒤 본격화하면 문을 닫아야 하는 대학들이 쏟아질지 모른다. 정부가 2023년까지 단계적으로 입학정원 16만 명을 사실상 강제 감축하는 구조개혁 방안을 제시한 후 위기감은 고조되는 양상이다.

서보명(50) 미국 시카고 신학대학원 교수는 저자다. 이 책은 자본에 휘둘리고 극심한 경쟁체제에 놓여 있는 대학을 매섭게 해부한다. 강의와 교육 못지 않게 생산이나 경쟁이란 용어에 익숙해진 대학 비판서다.

서 교수를 만난 이유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의 대학들이 비슷한 위기를 겪는 원인을 진단하고, 해법도 제시할 거라는 기대에서다.

고교 1학년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 간 그는 시카고대와 드류대를 나와 시카고 신학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가 개교 65주년을 기념해 최근 마련한 '미래고등교육포럼'에서 '20세기 인문학의 대학 개혁론과 현대 대학의 위기' 제목으로 주제 강연하기도 했다. 서 교수는"대학의 위기를 정책이나 제도만이 아니라 지성사의 관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운을 뗐다.

-대학의 무엇이 위기입니까.

"수많은 대학이 존재하고 있지만 제 역할을 하는 곳이 얼마나 될까요. 한국의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의 대학들 역시 체제에 순응하면서 방향을 확실하게 잡지 못하고 있어요."

-재정 문제 때문인가요.

"그런 측면도 무시할 순 없지만 그게 전부라고 보진 않아요. 재정이 충분하다고 대학이 100% 기능하는 건 아니에요. 한국 대학의 경우 '취업 준비기관'으로 전락한 게 돈 문제 때문인가요."

-대학생에겐 취업만큼 절박한 것도 없을 텐데요.

"취업이 학생들에게 지상 과제라는 건 국내든 미국이든 같다고 봐요. 다만 사람을 만드는 인격과 수양의 가치를 지향하는 대학들이 점점 줄어드는 게 개탄스러워요."

서 교수는 기업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그 체제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대학이 요즘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왜 그런 현상이 벌어졌을까요.

"초국가적인 권력을 지닌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무역기구 주도로 세계 각 나라 교육부가 대학 개혁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대학 개혁에 반대한다는 뜻입니까.

"정부가 끌고 가는 것에 대학이 지나치게 순종적인 부분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놓치고 있는 인간의 본질을 대학 스스로 물어야 해요. 순위 경쟁으로 스스로를 몰락시키는 프로그램에 비판적인 게 대학답습니다."

-대학 스스로 개혁할 힘이 부족하다 보니 정부가 나서는 것 아닌가요.

"부정하진 않겠지만, 문제는 대학이 수동적으로 속절없이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지요. 소위 '기업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의 대학 정책에 맞서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가 언급한 '기업주의'란 일반 기업처럼 대학도 사회와 동떨어진 학문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체제를 말한다. 학문 단위 구조조정 등 끊임없는 개혁으로 효율성을 추구해야 하는 시대를 대학이 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엔 재벌이 주인인 대학도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재벌은 사회에 빚을 지고 있어요. 이런 관점에서 기업이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지만, 직접 참여하는 건 안 돼요. 기부금 형태로 대학에 투자하는 정도에 그쳐야 합니다. 대학이 재벌 기업을 학교 운영에 끌어들이는 건 가치를 스스로 훼손시키는 행위죠."

-기업의 참여로 재정이 건실해지는 긍정적인 면도 있는데요.

"교수의 연구나 강의가 외부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건 대학이 유약하기 때문이에요. 미국에선 기업이 직접 대학을 운영하는 곳은 단 한 군 데도 없습니다."

-학생들로선 취업에 유리한 여건이 조성된 것 아닌가요.

"재벌 기업이 주인인 대학 출신이 취업에 유리하다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나온 적 있나요? 그런 학교 출신이 더 일을 잘 한다는 얘기도 들어본 적 없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서 교수로부터 받은 느낌은 대략 이런 거였다. 대학이 자본에 함몰돼 있고, 이런 상황에선 체제를 섬기는 하부 조직의 하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다. 대학이 체제에 순응한다는 논리를 즐기는 진보 학자의 냄새가 물씬 풍겼지만, 그는 "나는 미국에선 보수로 평가된다"고 했다. 한편으론 존립을 걱정하는 대학의 현실을 도외시한 한가한 판단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생존을 위한, 더 나은 연구와 교육을 위한 경쟁은 불가피하지 않습니까.

"모든 경쟁은 결국 독점체제로 굳어지기 마련이에요. 승자독식구조가 될 거라는 얘기죠. 예를 들어 미국만 해도 예전엔 아이비리그 대학끼리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곤 했지만 지금은 하버드대가 독보적인 1위에요. 재정적인 부문만 보자면 2위인 예일대가 따라가지 못합니다. 결과가 뻔한데 왜 소모적인 경쟁에 시간과 돈을 낭비합니까. 학생들이 서로 경쟁하는 건 바람직하지만, 대학이 경쟁하는 건 적절치 않아요."

-명문대와 그렇지 않은 대학이 어떤 곳인지는 삼척동자도 알 텐데요.

"미국에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대학을 가는 것에 대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학교 간판보다 대학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념을 보고 선택하기 때문이죠. 한국은 안 그렇잖아요. 대학이 다양화 돼 있지 않아 명문대 진학 욕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요."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 아닐까요.

"기업은 근본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잖아요. 기업 이익에 부합하는 사람을 채용하는 건 당연하지만 좋은 대학 나와 스펙 좋은 학생들이 입사 후 일도 잘한다는 통계가 발표된 적 있나요. 이 물음에 기업이 답할 수 있어야 해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 같은 창의성 있는 인재들이 대학 교육을 제대로 안 받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국내 대학은 '평가 노이로제'에 걸려 있다. 정부가 평가 결과를 갖고 재정 지원을 차등화 하고, 언론 등 외부기관 평가는 대학 평판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들이 평가팀을 따로 꾸리고 있을 정도다. 화제를 대학 평가 쪽으로 옮겼는데, 그는 평가에 대해서도 냉소적이었다.

-평가 없이 대학 발전이 가능할까요.

"평가를 위한 평가는 곤란해요. 논문 수 같은 정량적인 지표만으로 평가를 하는 건 서열 매기기 수준일 뿐이지요. 놓치는 게 많아요. 가치 중심적인 평가 지표를 많이 도입한다면 대학 입장에서도 보다 유용한 결과가 도출될 겁니다."

-외부의 좋은 평가가 경쟁력의 바로미터 아닌가요.

"대학 경쟁력은 세계 몇 개의 평가 기관에 놀아나고 있어요. 한국의 일부 대학도 매년 세계 100대 대학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요. 상위 50개 대학은 미국 대학들이 매년 싹쓸이 하고 있어요. 나머지 50개 대학을 놓고 다른 나라 대학들이 의미 없는 경쟁을 하고 있을 뿐이지요."

-대학들도 그렇게 판단할까요.

"한국 대학의 경쟁력이 강화되고 있는 건 맞아요. 그런데 한국엔 하나의 대학밖에 없어요. 300개에 가까운 대학들이 있지만 특색이 없어요. 명문 대학들은 학생들이 우수하지, 우수한 학생들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니에요."

서 교수는 '대학의 위기'에 대한 문제의식만큼 처방도 제시했다. "교양과정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였다. 뜻밖이었다.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요.

"인간에 대한 비전이 없는 대학은 대학이 아니에요. 그 비전으로 인격과 인간됨을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교양과정이지요. 이런 교양과정이 확대되는 건 대학의 위기 극복에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전공과의 균형이 더 필요해 보이는데요.

"한국의 대학들은 철저히 전공 중심으로 커리큘럼이 짜여져 있어요. 이게 교양 교육의 확대나 학문의 통합성을 저해하고 대학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지곤 해요. 전공을 고집하기보다는 다른 분야와의 소통 마인드를 교수나 학생들이 스스로 키워야 해요. 대학의 개혁은 전공과 교양과목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맞습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서 교수 같은 인문 철학자 시각에선 정부의 대학 구조개혁 방안이 정답으로 비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대학 개혁은 늘 딜레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대학의 특성화 강화다. 이게 각 대학의 지향점을 뚜렷하게 만들고 정부 간섭을 최소화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인터뷰=김진각 오피니언담당 부국장 겸 선임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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