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8시 출근 인파로 북적거린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승강장. 성수행 열차를 기다리며 줄지어 선 시민들 뒤로 서울경찰청 지하철경찰대 수사2대 송경욱(43) 권순재(41) 형사도 자리를 잡고 섰다. 언뜻 보기엔 평범한 시민 같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범상치 않았다.
"맨 앞에 서 있는 흰색 치마 입은 여자, 그 뒤로 착 달라 붙어 있는 남자 뭔가 이상하다. 따라 타 보자." 두 형사는 승객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콩나물 시루와도 같은 열차에 올라탔다. 두 정거장 뒤인 서울대입구역에 도착하자 '흰 치마를 입은 여성' 강모(20ㆍ회사원)씨는 '꺼이꺼이' 울면서 송 형사와 함께 열차에서 내렸다.
상황은 이랬다. 신림역 개찰구부터 강씨를 몰래 따라온 박모(31ㆍ회사원)씨는 열차 내 혼잡한 상황을 틈타 강씨의 치마 속으로 손을 넣어 엉덩이를 만진 후 귀에 대고 신음소리까지 냈다. 놀란 강씨가 어쩔 줄 몰라 하자 송 형사는 자신의 휴대폰에 '경찰입니다. 성추행 당하신 거 맞죠?'라는 문자를 찍어 보여준 뒤 함께 내린 것이다. 열차에 남아 있던 권 형사는 피의자 박씨를 붙잡았다. 지하철경찰대는 이날 오전에만 스마트폰 카메라로 여성의 치마 속을 몰래 촬영한 남성 등 성추행범 2명을 현장에서 검거했다.
지하철경찰대에선 2인 1조로 구성된 총 8개조가 매일 출퇴근 시간 '지하철 성추행범과의 전쟁'을 벌인다. 강남ㆍ사당ㆍ고속버스터미널역 등 사람들로 붐비는 환승역 승강장이 주요 단속장소다. 2명의 형사가 개찰구부터 승강장까지 쉴새 없이 돌아다니며 '매의 눈'으로 이곳저곳을 살핀다. 주변을 계속 두리번대며 왔다 갔다 하는 사람, 여성 뒤에 밀착해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 손에 쥔 스마트폰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꾸는 사람 등이 '요주의 대상'이다.
수상한 낌새가 포착되면 두 형사가 바로 뒤쫓아 함께 열차에 탑승한다. 송 형사는 "피의자를 조사해보면 멀쩡한 대기업 직원에 전문직 남성들도 수두룩하다"며 "겉모습만으로는 절대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성범죄여서 이상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고 말했다. 권 형사는 "최근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여성들의 옷차림도 가벼워져 성추행범들이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며 "특히 몰카범들은 주로 여성의 치마 속을 찍기 때문에 아무래도 추운 겨울보다는 봄여름에 범죄가 몰린다"고 말했다.
실제로 여성가족부와 서울지하철경찰대가 최근 발표한 성범죄 검거실적을 보면 지난해 1~3월(128건)에 비해 옷차림이 가벼워지는 4~6월(422건) 검거 건수가 3배 이상 많았다. 게다가 2012년 800명이 적발된 지하철 성범죄자는 지난해 952명으로 19%나 증가했다. 지하철경찰대가 이날부터 7월31일까지 넉 달을 '성추행 특별예방 집중단속' 기간으로 정해 감시를 강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응우 지하철경찰대 수사2대장은 "추행을 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소리를 질러 바로 제지하는 것이 좋지만 여의치 않으면 112에 문자로 신고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문자로 신고할 때는 열차 위치, 진행방향, 탑승한 칸을 알려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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