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에서 이상화 선수가 500m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우승하자 '축 올림픽 2연패'라고 쓰인 자막이 화면을 덮었다. 옆에서 TV를 보고 있던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빠 왜 금메달을 땄는데 2연패 했다고 그래요?"라고 묻는다.
TV 자막의 2연패(覇)는 두 번 연속 제패했다, 즉 이겼다는 의미이고, 아들이 이해한 2연패(敗)는 두 번 연속 패배했다는 말이니, 같은 말이 '이겼다'와 '졌다'의 의미로 쓰였으니 아들이 이해하기는 힘들었을 게다.
얼마 전 중년의 3남매가 함께 상담하러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이들은 소송을 당했다면서 근심 어린 얼굴로 내놓은 소장에는 "피고들은 원고에게 각자 2억원을 지급하라"고 되어 있었다. 피고가 3명인데 '각자' 2억원을 지급하라고 하니 총 6억원의 소송을 당했는데 어떻게 하느냐며 걱정이 태산이었다.
나는 이들 3남매와 상담을 시작한 지 3분도 안 되어 이들에게 무려 4억원을 벌게 해주었다. 순식간에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게 해줄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각자'라는 말에 있다. 각자는 한자로 '各自'로 쓰고, 보통 '각기 또는 따로따로' 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니 '피고들은 각자 2억원을 지급하라'고 하면 '피고들은 각각 따로따로 2억원씩 지급하라'는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법률가들은 '각자'를 완전히 다른 뜻으로 쓰고 있다. 3남매에게 소송을 제기한 쪽에서는 '피고들은 연대해서 2억원을 지급하라'는 뜻으로 소장을 낸 것이다. 3남매는 모두 6억원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 소송에서 전부 패소해도 2억원만 물어주면 된다. 그러니 3남매는 앉은 자리에서 4억원을 번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차라리 이런 경우는 낫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법원에서 상대방 피고 2명에게 각자 1억원을 원고한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으니 총 2억원을 받게 되었다고 뛸 듯이 기쁜 표정을 하는 의뢰인을 만났을 때이다. 그 의뢰인에게 올바른 설명을 해주기는 하지만 의뢰인에 따라 잘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하는 사람도 있고 괜히 나를 원망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법률가들은 '각자'라는 용어를 이럴 때 쓴다. 예를 들어 경찰이 국민을 불법적으로 체포했다고 하자. 체포된 사람은 그 경찰 외에도 경찰을 관리, 감독하는 국가를 상대로도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데 이런 소송의 판결에서 경찰과 국가는 연대책임을 지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법원은 "원고에게 국가와 경찰 아무개는 '각자' 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하게 된다. 이를 진정하지 않은 연대채무, 이른바 부진정 연대채무라고 부른다.
연대채무의 경우 '연대하여 지급하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이 경우에도 '각자' 대신 '연대하여'라는 말을 써서 혼란은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일반적인 연대채무와 부진정 연대채무는 법리적으로 다른 점이 있고 또 '각자'를 대체할 만한 적당한 용어를 찾지 못해 지금도 '각자'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법리적인 차이로 '연대하여'라는 표현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그렇다고 용어를 일반적인 의미와 정반대의 뜻으로 사용하여 혼란을 야기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더욱이 '각자'는 '얼마'에 해당하는 돈의 액수 앞에 붙는 수식어라 소송 당사자들이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할지는 누구보다 법원 스스로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지방법원장이 최근 취임식에서 "여러분들 '각자'가 사법부 전체를 대표한다는 책임의식을 가지고 판결문상의 표현 하나하나에도 더욱 신중을 기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법원장은 여기서 '각자'를 '연대하여'라는 뜻으로 쓰지 않고 일반적인 의미인 '각각'의 의미로 썼다.
황제노역 판결로 법원장이 옷을 벗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법원이 국민들과 '각자' 생각하고 행동하는 옛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국민들과 '연대하여'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노력을 모든 법관이 '각자'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장진영 변호사ㆍ서강대 로스쿨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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