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이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 김모 과장과 국정원 협조자 김모씨를 구속기소했다. 이들에게는 국가보안법상 날조죄 대신 형량이 훨씬 가벼운 모해증거위조 및 모해위조증거 사용혐의가 적용됐다. 공소장을 보면 김 과장은 협조자 김씨에게 간첩혐의로 기소된 유우성씨의 변호인이 법원에 낸 서류가 허위라는 중국 쪽 답변서를 요구했다. 김씨가 "가짜를 만드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자 "걱정 말라"며 위조를 종용했다. 김 과장은 위조문서에 적힐 문구를 적어줬고 김씨는 가짜 관인까지 만들어 문서를 위조했다. 이 정도면 원래 있던 사실을 변조한 게 아니라 없는 사실을 만들어냈다(날조)고 보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검찰은 "형체가 있고 비교 대상이 있는 상황에서 허위로 만들어내는 게 위조이고,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게 날조"라고 날조죄를 적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김 과장과 김씨의 행위야 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전형적인 경우 아닌가. 검찰의 주장은 "모해증거위조와 동일한 행위가 국보법 사건에 해당하면 날조죄로 가중처벌하는 특별법 우선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대다수 학자들의 해석과도 배치된다.
국보법 권위자인 황교안 법무장관도 저서 에서 "날조는 증거를 허위로 조작해내는 것을 말하며 형법상 위조ㆍ변조는 물론 위조ㆍ변조한 증거의 사용도 포함된다"고 밝히고 있다. 검찰이 법무장관의 판단과도 다른 이유를 제시하면서 국정원의 체면을 생각해 정치적 고려를 했다고밖에 볼 수 없다. '봐주기 수사'라는 지적이 나오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검찰은 증거조작의 윗선도 밝혀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 과장 등 국정원 대공수사팀 직원들이 말을 맞춘 듯 진술을 거부한 때문이지만 애초 수사의지가 부족한 게 더 큰 이유다. 게다가 간첩 사건 수사와 재판을 담당한 검사들이 "위조한 사실을 몰랐다"고 진술하자 이를 그대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국정원을 봐주고 제식구를 감싸면서 끝낼 것이라는 항간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검찰이 조만간 내놓을 최종 수사결과가 이정도 수준이라면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설특검제의 첫 번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