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소설을 한 권 읽기 시작했다. 제목에 마음이 끌려 가볍게 집어 들었는데, 직역에 가까운 뻑뻑한 문장 탓에 다소 애를 먹고 있다. 오래 전이었다면 그냥 덮어버렸을 것이다. 호기심에 펼쳐 들었을 뿐 어디에 리뷰를 써야 하는 것도 아니니 눈을 부릅뜨고 독파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거칠거칠한 번역에 괴롭힘을 당하면서 묘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가령 이런 구절이 나온다. "살구처럼 푸르면서도 파란 눈." 우리말로는 영 어색하다. '푸르면서도 파란'이란 동어반복에 가깝고, 살구야 주황색에 가까운데 어떻게 살구처럼 푸를 수 있나 의문이 들기도 한다. '풋살구처럼 파란 눈' 정도로 번역되었다면 한국 사람의 감각에 좀 더 잘 감겨 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살구처럼 푸르면서도 파란 눈"이라는 좀 이상한 구절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동시에 내가 모르는 원문의 세계를 궁금하게 만든다. '푸르다'와 '파랗다'로 따로 옮겨진 원래의 단어들은 얼마나 차이가 지는 걸까. 그곳의 색채감각은 이곳의 색채감각과 어떻게 다를까. 또 그곳의 살구는 이곳의 살구와 어떤 점이 달라서 '살구처럼 푸르'다고 할 수 있는 걸까. 매끄럽고 유려한 번역이었다면 나는 그곳의 삶과 그곳의 언어를 굳이 생각해 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번역이 더 좋은가 하는 문제와는 별개로, 온전히 옮겨지지 않는 어떤 잉여를 통해 나는 다른 결의 언어, 다른 살구의 세계를 엿보기도 한다.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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