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는 요즘 고민이 많다. 지난달 20일 박근혜 대통령까지 참가한 규제개혁장관회의(끝장토론)에서 나온 제안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국내소재 외국대학인 한국뉴욕주립대 김춘호 총장은 외국대학에 대한 차별을 없애달라고 건의했다. 외국 대학은 국내 대학과 달리 ▦정부의 장학금 지원 ▦교직원의 사학연금 가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당초 장관이 나서 불수용 의사를 밝혔다. 외국교육기관 특별법에 따라 설립돼 국내 규제를 전혀 적용 받지 않는 외국대학이, 혜택만 국내 대학과 동등하게 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김 총장의 제안은 엄밀한 의미에서'규제개혁'이 아니라 특혜를 달라는 '민원'성격이 강했다.
1일 정부 규제개혁 관계자에 따르면 교육부는 냉가슴을 앓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지휘하고, 모든 부처가 규제개혁을 외치는데 "외국대학 장학금 지원 금지는 규제가 아닙니다"라고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것이다. 당장 지난달 30일 국무조정실이 규제개혁 과제 144건의 추진 일정을 내놓으면서 교육부에 6월까지 외국대학 차별의 타당성을 소명하라고 요구했다. 교육부는 장학금 대신 외국대학의 학과 증설 절차를 간소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144건 중 끝장토론에서 제기된 52개 과제는 꼭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처 반대로 경제장관회의 차원에서 규제 개선이 어렵다면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 관계장관회의로 격을 올려서라도 어떤 대안이라도 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규제개혁 작업이 철폐 일변도로 방향이 잡히면서, 자칫 재계의 민원 창구로 변질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불합리한 규제는 개선해야 하지만 이틈을 타고 특정 이익집단에 특혜를 주거나 규제가 아닌 제도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행법상 규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특정 목적 달성을 위해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는 금지, 단속, 면허, 허가, 제출의무 등이 있다.
그러나 국무조정실이 제시한 규제개혁 과제 목록에는 규제라기보다 민원에 가까운 제안들이 포함돼 있다. 세금 감면 요구가 대표적이다. 예컨대 해외여행객의 면세한도를 확대하거나 기업 창업자의 자손이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 세제 혜택을 늘려달라는 식이다.
두 제안 모두 기획재정부가 당초 반대 방침을 밝혔던 것들이다. 면세한도는 세금 감면은 규제가 아니라 혜택인 만큼 조세형평성을 엄밀히 따져야 하고, 가업 승계 역시 지난해 공제한도와 적용대상을 크게 확대했기 때문이다.
부담금 감면 요구도 규제개혁으로 보기 힘들다. 부담금은 사업자에게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일부 부담케 하는 제도다. 비용과 편익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고 재계 입장만 반영해 부담금 제도를 손댈 경우 오히려 특혜 시비가 일어날 수 있다. 정부는 여수산단의 녹지를 공장용지로 전환할 때 기업 부담이 과중하다고 판단하고 공공시설 설치 비용을 지가차액 환수액에서 공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밖에 정부는 의료폐기물인 진공채혈관 등에 대해 폐기물 부담금을 면제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전문가들은 규제개혁 과제를 신중히 선정하고 엄격한 개혁 틀 안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영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초자치단체 수준에서는 민원해결과 규제개선을 혼동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며 "공무원조차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 만큼 규제개혁에 대한 개념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준구 LG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도 "기업 입장에선 과도한 세제나 부담금 역시 규제로 여겨질 수 있다"면서도 "부담금이나 각종 규제는 도입 당시 목적이 있었던 것인데 너무 규제개혁을 서두르다 부작용을 양산할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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