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두 남녀에서 시작했다. 건설사를 운영하는 악당은 자신의 치부를 찾아낸 부하직원이자 딸의 약혼자를 제거했다. 외교관을 꿈꿨던 남자는 누명을 쓴 채 살인범으로 몰렸고, 살인사건으로 약혼자를 잃은 여자는 살인 용의자를 증오했다. 옥살이를 마친 남자가 복수하고자 누명을 씌운 원수와 그의 딸에게 접근한다.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단어는 복수극이다. 그러나 KBS 월화드라마 (극본 허성혜ㆍ연출 배경수) 제작진은 대중을 자극하는 이야기보다 대중에게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했다. SBS 처럼 외계인 도민준의 초능력을 활용할 수도 없고, MBC 처럼 재미있는 설정을 위해 역사를 바꿀 수도 없다. 작가와 PD는 아버지를 잃은 정세로(윤계상)가 원수의 딸 한영원(한지혜)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심리와 의식의 흐름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편성운이 나빴다. 같은 시간에 방송하는 는 시청률 26.5%를 기록했고, 1, 2회(2월 17일)는 소치 동계올림픽 기간에 방송했다. 당시 시청자 관심은 온통 소치 동계올림픽에 쏠렸다. 는 사실상 총알받이나 다름이 없었다. 시청률 3.7%로 시작한 는 시청률 경쟁에서 참패했다. 제작진에게 위안이라면 “재미있다”는 시청자 평가였다.
그렇다면 는 실패한 드라마일까? 시청률만 놓고 보면 실패작임에 틀림없다. 조기 종영까지 검토했던 KBS에 는 불효자였다. 그러나 시청률이 낮다고 드라마 질까지 떨어진다고 볼 순 없다. 동등한 조건에서 실력을 겨뤄 우열을 가르는 올림픽과 달리 TV 시청률은 각종 외부 변인을 반영한 시청자 선호에 좌지우지된다. 좋은 드라마라도 시청률이 낮을 수 있다는 뜻이다.
주인공 정세로는 한영원을 보면서 “그렇게 맑은 얼굴을 하고 날 망가트렸다고?”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던 그가 “용서할 수가 없는데, 너무 화가 나는데, 부셔버리고 싶은데, 나 당신을 사랑하면 안돼요?”라고 말할 때 시청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에서 비롯된 분노가 새로운 사랑을 낳는다는 기획 의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3%대 시청률 때문에 고개를 숙인 제작진은 원수의 딸을 사랑하는 남자를 설득력 있게 보여줌으로써 절반은 성공했다.
어설픈 불륜과 출생의 비밀을 지양하는 KBS 드라마국이 절반의 실패(시청률)보다 절반의 성공(시청자 공감)을 분석해 시행착오를 겪길 바란다.
이상준기자
한국스포츠 이상준기자 jun@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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