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황제 노역' 논란을 부른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메스를 들이대면서 비자금 조성ㆍ은닉 수법 및 규모가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간 허 전 회장의 숨겨진 재산 찾기에서 변변한 실적을 내지 못한 검찰이 비자금 수사를 통해 벌금 강제집행의 돌파구를 찾겠다고 벼르고 있어 소기의 성과를 낼 것이라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검찰은 허 전 회장이 위장 건설 시행사를 비자금 조성 창구로 이용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지역 건설업계에서는 허 전 회장이 모기업인 대주건설의 아파트 개발사업 현장마다 별도의 위장 시행사를 설립해 개발이익금 등을 은밀히 관리했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업계 등에 따르면 허 전 회장은 측근을 내세워 설립한 위장 시행사에 뒷돈을 대 아파트 건립부지를 매입한 뒤 대주건설이 시공을 맡아 다시 도급을 주는 식으로 사업을 해왔다. 2007년 12월 당시 대주건설이 전국에서 개발 중이던 아파트 사업장 91곳 가운데 도급방식 사업장이 절반 이상인 48곳에 달했다.
이 과정에서 동양저축은행 등 그룹 금융계열사들은 대주건설의 보증이나 동의 없이는 부지대금을 빌려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위장 시행사에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해줬다. 대주건설이 사업 주도권을 쥘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렇게 허 전 회장은 아파트 시공수익과 금융수익뿐 아니라 시행수익까지 챙겼다. 분양 실적 저조로 사업이 어려워지면 시행사가 모든 책임을 지고 파산하면서 허 전 회장은 손실을 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허 전 회장이 이렇게 위장 시행사를 동원해 빼돌린 수익금을 측근을 통해 관리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허 전 회장이 대주건설 하도급업체 대표 A씨에게 차명 계좌로 재산을 은닉했다가 도리어 5억원을 뜯긴 것도 A씨가 이런 사업 방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31일 공갈 혐의로 구속된 A씨는 이날 구속 전 피의심문을 마친 뒤 "검찰이 허 전 회장 비자금을 수사하기 위해 나를 구속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2010년 대주건설이 최종 부도 처리될 당시 20여개 위장 시행사가 전국에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수천억원대 아파트 부지에도 의심의 눈초리를 떼지 못하고 있다. 당시 이 땅 대부분이 지역 건설업체 등에 팔렸는데, 매각대금 중 상당액이 허 전 회장의 차명 계좌로 흘러 들어갔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당시 위장 시행사 대표들의 소재를 파악하는 한편 아파트 부지 매각 관련 서류 등 증거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위장 시행사를 조사하면 대주건설의 자금 흐름을 한 눈에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검찰 주변에선 아파트 부지 매각 과정을 파 보면 의외의 성과를 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지역 건설업계에서는 "허 전 회장이 아파트 부지를 매각하면서 뒷돈을 챙겼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허 전 회장이 장부상 매매가에 비해 실제 받은 돈이 더 많은데, 이 차액을 비자금으로 은닉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 진척에 따라 부지 매수자측의 비자금 문제로까지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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