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세요."
요한 바오로 2세는 힘겹게 오른팔을 들어 강복의 자세를 취했다. 마지막 기도를 끝낸 그는 성 베드로 광장에 운집한 인파를 바라보며"아멘!"이라 말한 후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2005년 4월 2일 가톨릭 교회의 수장이자 지구촌 12억 신자들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교황 선종을 알리는 조종이 울리자 로마 바티칸 시티와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있던 신자들은 침묵에 휩싸였고 세계의 지도자들은 앞다퉈 애도 성명을 발표하며 그의 업적을 기렸다.
1920년 5월 폴란드의 작은 마을 바도비체에서 태어난 교황의 본명은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였다. 어릴 때부터 운동과 예술을 좋아했던 보이티와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지만 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그 꿈은 꺾였다.
나치 치하를 몸으로 겪으며 이념과 국가의 이름 아래 사람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가를 깨달은 그는 비밀리에 운영되던 지하 신학교에 들어갔고 1946년 사제서품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성직자의 길로 들어섰다.
1978년 10월 22일, 전임 요한 바오로 1세가 즉위 34일 만에 서거하자 추기경 자격으로 콘클라베에 참석했던 그는 여덟 번째 투표를 통해 20세기 가장 젊은 교황에 선출됐다. 비 이탈리아 출신으로 가톨릭 최고 지도자에 오른 보이티와는 전임 교황을 따라 요한 바오로 2세로 이름을 바꾼 후 분쟁지역과 오지를 오가며 왕성한 순례활동을 시작했다.
취임 이듬해 공산체제 하의 조국 폴란드를 방문해 자유노조운동을 지지했고 1981년 흉탄에 맞아 죽음의 문턱을 넘으면서도 암살범의 사면을 구원했다. 티베트 불교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허물없이 마주앉았고 2001년에는 시리아 이슬람 사원을 전격 방문해 종교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에 대한 애정 또한 각별했다. 1984년 5월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바오로 2세는 김포공항에 도착해 땅에 입을 맞추며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 구절을 한국어로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4박 5일을 체류하며 광주 5ㆍ18 묘역을 참배했고 소록도를 찾아 한센병 환자들을 위로함으로써 낮은 곳에 임하는 교황의 참모습을 보였다.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03인의 순교자가 이때 성인에 시성됐으며 89년에는 세계성체대회를 위해 한국을 재방문하기도 했다.
세계 구석구석을 돌며 인간 존엄과 생명가치를 설파하던 교황은 2000년대 들어 건강이 급속히 악화했으며 결국 2005년 4월 2일 파킨슨병과 심부전증을 이기지 못하고 영면에 들었다.
요한 바오로 2세 선종 후 베네딕토 16세를 거쳐 현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3년부터 가톨릭 교회를 이끌고 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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