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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운 것을 버려라

입력
2014.03.3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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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아일랜드 출신의 표현주의 화가가 있다. 베이컨은 인물형상을 그로테스크하게 담아 인간의 폭력성과 존재적 불안감을 그려낸 작가이다. 그는 정식미술학교를 다닌 것이 아니라 독학으로 그림을 배웠으며 회화뿐 아니라 사진, 영화 등의 다양한 예술방식의 영향을 받았으며, 독자적인 표현방식을 획득한 20세기의 뛰어난 작가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의 마지막 작업실이었던 영국의 남부 켄싱턴 리스 뮤스 7번가의 시절이다. 발 디딜 틈도 없을 만큼 무질서하기로 악명 높았던 베이컨의 작업실은 그의 작업스타일인 혼돈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쓰레기 더미와 같은 작업실에서 기거하며 문짝을 팔레트 삼기도 하고, 붓도 빨지 않고 낡은 양말이나 셔츠에 닦으며, 30년간 치우지 않고 그림을 그려냈다.

반면 내가 아는 한 작가는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 채 평상복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의 작업실 바닥에는 물감 자국을 볼 수가 없으며 옷에 물감을 묻히는 일도 없다. 설령 작업 중 물감이 떨어지면 바로 닦아내거나 세척을 해야 한다. 거의 병적으로 물감이 묻는 것을 혐오한다. 한 사람은 치우지 않았지만 한 사람은 치워야만 산다. 프랜시스 베이컨과 그는 극단적으로 다른 것 같지만 다르지 않다. 그 집요함과 집착으로 이어지는 예술의 추구가 같다.

사실 그는 시각적인 것에 대한 지독한 탐닉을 한 화가이다. 아름다움을 보는 것에 있어서 스스로 선각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릴 수 있는 감흥이 없으면 삶을 고통스러워한다. 그에게 그리는 것은 표현하는 것이고 표현하는 것은 자신을 진솔하게 드러내는 것이며 그것은 곧 생명 안에 놓여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지 않는다는 것은 곧 어둠의 상태이며, 그려야 할 동기가 없다는 것은 생명이 끊겨 있는 것이라 할 만큼, 그에게 그림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광기만큼 지독한 투쟁의 역사다. 그도 베이컨도 둘 다 평범한 상황에 놓일 수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게 보면 예술가들이 가진 독특한 정신적 영역의 추구는 뭇사람들의 상식으로는 가늠하기가 어려운 일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창의적인 것, 결국 독창성이다. 그러나 창의라는 것은 상상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천재적인 작가들이 그들의 타고난 재능만으로 반열에 올라섰다는 것은 착각이다. 지식이 있어야 한다. 베이컨도 내가 아는 그 작가도 끊임없이 피카소와 같은 대가들을 연구했다. 또한, 피카소와 마티스도 서로 베끼고 연구했다. 그들은 창의를 위해 열성을 갖고 사색하며 도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지식의 습득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그냥 무조건적인 견해의 주입이 아니다. 스스로의 판단력과 상상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의 제도권 교육은 그렇지 못하다. 기다리지 않는다. 숟가락으로 밥을 떠먹이며 빨리 삼키기를 강요한다. 지식산업,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주입이란 해악이다. 기다림의 미학이 절실하다.

실제로 많은 작가들이 토로하는 것이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을 버리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다. 배운 것을 버리고 나니 진정한 회화가 시작되더라는 것이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자기 내면의 자유로운 언어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교육체제 안에서 우리는 창의성을 기르는 일이 아니라 지적 구속을 자행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키우는 데에는 특별한 시선이 필요하다. 번뜩이는 감각과 정신을 소유하는 이들의 기지를 발견하고 독려해야 한다. 그들의 생각이 나와 다르다고 자르지 말아야 하며 오히려 날개를 달아주어야 한다. 그런 과정 속에 우리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피카소와 마티스와 같은 작가들을 더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창의적 교육은 쌓기만이 아니라 버리기가 필요하다. 숙련된 것을 벗어나려는 자기 부정과 익숙한 것과의 이별이 독창성을 만든다. 버릴 줄 아는 것이 새로운 것을 쌓는 모토를 이룬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의 언어로 완성된 생각이 감동을 주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안진의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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