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스스 일어나 주방에 나오니 한숨이 나왔다. 어제 그제 이틀 동안 먹어대기만 하고 설거지를 하지 않은 탓이다. 개수대에 잔뜩 쌓인 그릇들하며 들러붙은 음식찌꺼기하며 어질러진 선반과 식탁하며…물 마실 컵 하나 놓을 자리가 없었다. 뭐부터 치워야 하나. 멍하니 의자에 앉아 엉망진창의 잔해들을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건 뭘까, 너저분하면서도 사뿐한 이 고요는. 구겨지다가 만 알루미늄 호일이 주전자에 걸쳐져 있었다. 접시에서 절반 넘게 벗겨진 랩의 끝부분은 천장을 향하고 있었다. 생선 핏물이 말라붙은 초록색 비닐봉투는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고, 빈 과자봉지에는 세모꼴로 뜯어낸 모서리가 간신히 붙들려 있었다. 먹을 거리를 담거나 덮고 있던 것들의 아슬아슬한 정지자세들. 중력이 살짝 달리 작용하는 것 같았다. 벽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렸지만 시간이 잠시 멎은 것도 같았다. 나 역시 움직이지 않고 가만 앉아 있자니 어릴 적 잠자리 날개에 살금살금 다가가던 기분이 떠오르기도 했는데, 이번엔 살금살금 숨을 쉬며 무엇에 다가가고 싶었던 것일까. 이 풍경 속에 감춰진 다른 리듬의 시간이었을까. 창 밖에서는 잎사귀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실내에서는 상한 음식 냄새가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었다. 버리고 치우고 어서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야 했지만, 공기에 붙들린 저 가벼운 것들과 함께 여기 그냥, 좀 더 있고 싶기도 했다. 그대로 가만히.
신해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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