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의 보석 같은 피칭이 다저스의 패배로 낭비됐다.”
미국 CBS스포츠는 31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본토 개막전으로 열린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레스의 경기 후 승리 팀 샌디에이고 대신, 류현진(27ㆍLA 다저스)의 이름만 반복했다. CBS스포츠 홈페이지는 “류현진이 빛났다”는 제하의 기사에서 “2년차 류현진은 1회말 위기에 빠졌으나 자신을 가다듬고 이를 넘겼다”며 “류현진은 남은 시간 동안 마운드 위에서 16타자 연속 아웃을 잡는 등 특출한 투구를 선보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류현진이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의 펫코파크에서 열린 샌디에이고와의 메이저리그 정규시즌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 7이닝 동안 삼진 7개를 솎아내며 안타와 볼넷 3개씩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마운드를 내려왔으나 구원투수의 난조로 승리를 날려버렸다. 1-0으로 앞선 8회말부터 마운드에 오른 브라이언 윌슨(32)이 동점과 역전을 허용해 류현진의 시즌 2승은 아쉽게 물거품이 됐다. 다저스는 1-3으로 역전패했지만 류현진은 이날 자신의 이름 석자를 미국 전역에 각인시킨 인상적인 투구내용을 선보였다.
등판 순서도, 투구 내용도 ‘명실’공히 에이스
1선발 클레이튼 커쇼(26)가 나설 경기였다. 그러나 커쇼가 등 쪽의 통증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들면서 류현진이 호주 개막 2연전에 이어 또 다시 중책을 맡았다. 류현진도 5이닝 무실점으로 선발승을 거둔 지난달 23일 애리조나와 경기에서 주루 플레이를 하다가 오른쪽 엄지발톱을 다쳤지만 빠른 회복세를 보여 이날 등판에는 별 무리가 없어 보였다. 류현진은 1회 무사 2ㆍ3루, 2회 무사 1ㆍ2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빼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실점 없이 넘긴 후 안정을 되찾았다. 2회 첫 아웃카운트부터 7회 1사까지 16타자를 연속 범타 처리해 샌디에이고 타선을 봉쇄했다. 올 시즌 두 경기에서 12이닝을 던지는 동안 평균자책점 0의 행진이었다. 류현진은 88개의 투구 수 가운데 54개를 스트라이크로 꽂았다.
업그레이드된 커브ㆍ슬라이더
호투의 비결은 변화구 구사에 있었다. 커브, 슬라이더가 포수 미트에 꽂혔다. 류현진은 경기 초반 체인지업이 말을 듣지 않아 고전했다. 오른 발톱 부상의 영향 탓인지 공의 변화 시점이 너무 빨랐다. 그러나 커브, 슬라이더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위기를 넘겼다. 4회부턴 제구까지 살아났다. 단 88개의 공으로 7회까지 소화한 경제적인 피칭의 원동력은 두 가지 변화구에 있었다.
7개의 삼진 중 슬라이더가 2개, 커브가 1개였다. 류현진은 2회 2사 2ㆍ3루에서 1번 에베스 카브레라에게 슬라이더를 던져 헛스윙 삼진 처리했다. 5회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도 카브레라를 다시 한 번 슬라이더로 요리했다. 6회 1사 후엔 3번 체이스 헤들리를 낮은 커브로 삼진 처리했다. 이 밖에도 1회 바깥쪽 직구(헤들리), 4회 바깥쪽 직구(5번 욘더 알론), 5회 체인지업(8번 르네 리베라), 6회 몸쪽 직구(4번 제드 저코) 등을 결정구로 던지며 삼진 개수를 늘렸다. 다양한 볼배합으로 타자를 혼란스럽게 했고, 대부분의 공들은 낮게 형성됐다. 또 체인지업만 기다린 타자들은 의외의 커브, 예리한 슬라이더, 또 의표를 찌르는 직구에 당황했다. 류현진은 이날 투구수 88개 가운데 45개를 직구로 채웠다. 체인지업 19개(21.6%), 커브 13개(14.8%), 슬라이더가 11개(12.5%)였다. 팬그래프닷컴이 분석한 지난해 류현진의 구종 별 구사율(직구 54.2%, 체인지업 22.3%, 슬라이더 13.9%, 커브 9.5%)과 비교해 커브 구사율이 5.3%나 늘었다. 슬라이더는 1.4% 줄었지만 오른손 타자 몸쪽으로 빠르게 휘면서 또 다른 승부구 역할을 했다. 류현진도 경기 후 “오늘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특히 커브와 슬라이더가 잘 들어가줘 후반에 편하게 갔다”고 말했다. 류현진은 “7회부터 구속도 떨어져 내가 먼저 그만 던지겠다고 말했다”면서 “아쉽지만 한 경기일 뿐이다. 투구 내용에 만족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전국구 스타 예감한 전미(美)의 관심
이날 경기는 올 시즌 메이저리그 공식 개막전 성격으로 스포츠전문 케이블 채널 ESPN을 통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됐다. 국내프로야구 시절부터 두둑한 배짱과 스타성을 겸비해 큰 경기에 강했던 류현진은 미국에서도 전국구 스타 반열에 오르는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ESPN 중계진은 16타자 연속 범타 처리와 함께 커브, 체인지업, 슬라이더, 직구 등 결정구로 4가지 구종을 자유자재로 뿌리며 삼진을 잡아낸 류현진을 자세하게 조명했다. 중계진은 “타자 몸쪽과 바깥쪽에 원하는 대로 체인지업을 뿌렸다”며 류현진의 주무기 체인지업에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또 “류현진이 다저스 선발 로테이션에서 세 번째 투수에 해당하나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2선발로 뛸 수 있다는 점을 확실하게 보여줬다”고 소개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인 MLB닷컴은 “류현진은 최고였으나, 다저스는 8회를 넘기지 못했다”고 류현진의 역투를 조명煞? LA 타임스는 “류현진이 부상 당한 커쇼 대신 마운드에 올라 에이스의 면모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돈 매팅리(53) 다저스 감독은 “모든 구종을 잘 구사했고, 특히 커브와 슬라이더가 좋았다”고 극찬했다. 류현진의 다음 등판은 내달 5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샌프란시스코와의 홈 개막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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