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노역' 논란을 빚은 허재호(72) 전 대주그룹 회장이 2008년 경영난을 겪던 모기업 대주건설에 그룹 계열사 돈 수백억 원을 부당 지원한 정황을 검찰이 포착하고도 석연찮은 이유로 무혐의 종결한 것으로 드러나 봐주기 수사 의혹이 일고 있다.
30일 검찰 등에 따르면 광주지검은 2009년 9월 계열사 대한시멘트와 대한페이퍼텍에 780억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로 고발된 허 전 회장과 두 계열사 대표에 대한 경찰의 수사를 지휘했다. 당시 고발인 A씨는 "두 계열사 대표가 허 전 회장의 지시를 받고 회생가능성이 없는 대주건설에 자금을 지원해 결국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했다.
실제 대한시멘트와 대한페이퍼텍은 2008년 2월 말 대주건설에 각각 473억원과 307억원을 담보도 없이 빌려줬다가 자금난을 겪으면서 이듬해 하반기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당시 허 전 회장은 두 회사의 지배주주이자 이사였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7,539억원의 수익이 예상되는 대주건설의 경기 용인시 공세지구 아파트(2,000가구) 분양 실적이 95%를 넘어 대여금 회수에 문제가 없고, 고금리를 받는다는 경영 판단에 따라 돈을 빌려 줬다"는 계열사 대표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경찰의 불기소 의견을 원용해 2010년 3월 무혐의로 사건을 종결했다.
하지만 두 회사가 당시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진 대주건설을 상대로 연리 9%의 '돈놀이'를 하겠다며 법인세를 낼 돈도 남겨두지 않은 채 자금을 빌려준 것은 '정상적인 경영 판단'으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한 중견 판사는 "이는 경영 판단의 재량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앞서 2007년도 대주건설 회계감사 보고서는 그룹 계열사 등 특수관계자에 대한 채권(2,300억원)과 채무(1,819억원)의 회수나 상환이 불투명해 유동성 부족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대주건설은 2009년 1월 채권금융기관이 신용위험 평가에서 퇴출 대상 기업으로 분류돼 자금난에 빠졌고, 공세지구 아파트 사업은 공사 지연으로 인한 지체보상금(1,500억원)까지 발생하면서 751억원의 손실을 봤다. 결국 2010년 10월 최종 부도 처리됐다.
대한시멘트 등은 이 같은 사실을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모두 밝혔고, 당시 법원도 허 전 회장 등에게 배임 혐의가 있다고 봤다. 그런데도 검찰은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사건을 덮었다. 특히 검찰의 이런 결정은 2010년 1월 '황제 노역' 논란을 부른 허 전 회장의 항소심 판결에 대해 상고를 포기한 직후 이뤄진 것이어서 봐주기 수사 의혹이 커지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시 사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살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제의 항소심 판결 재판장이었던 장병우 광주지법원장은 29일 "최근 저를 둘러싼 여러 보도와 관련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표를 제출했다. 앞서 장 원장은 2007년 대주건설이 지은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기존 아파트를 대주그룹 계열사인 HH개발에 판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문제가 된 아파트는 정상적인 거래로 취득한 것으로 어떤 이익도 취한 바가 없다"며 "다만 이사 후 기존 아파트가 시세에 맞게 처분되는 지에만 관심을 가져 거래 상대방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한 불찰로 물의를 일으킨 데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황제 노역'과 지역법관제 논란에 대해 "양형 사유들에 대해 종합적이고 분석적인 접근 없이 한 단면만 부각되고 지역 법조계에 대한 비난으로만 확대된 점도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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