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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이성태'도 '안티 김중수'도 안 된다

입력
2014.03.3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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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총재에게 '대통령 맨' 이나 '낙하산' 이미지는 일종의 주홍글씨다. 일단 그런 식으로 낙인 찍히면 임기 내내 벗어나기가 힘들다. 금리를 올려도, 내려도, 심지어 아무 것도 안 해도 온갖 정치적 해석이 이어진다. 시장은 중앙은행보다 정부에 더 귀를 기울인다. 중앙은행과 시장 사이에 소통이 제대로 될 리 없고, 서로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진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은행이 꼭 이런 모습이었다.

내일(4월1일) 취임하는 이주열 신임 한은 총재에겐 다행히도 이런 주홍글씨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 수첩에 이름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또 요즘 금융계에서 잘 나간다는 연세대 출신이긴 하지만, 어쨌든 '친박' 이미지는 없다. 하기야 그런 게 있었다면 사상 첫 한은 총재 인사청문회가 그렇게 평이하게 끝났을까.

더구나 임기(2018년3월)도 박근혜정부와 거의 같이 끝난다. 아무리 신분이 보장되는 중앙은행 총재라고 해도 정권교체기엔 곤혹감을 느끼기 마련인데 이주열 총재는 그런 부담이 없다. 정말로 일하기엔 좋은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주열 총재에게도 몇 가지 오버랩 되는 이미지가 있다. 비록 정치적인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최고 금리 결정권자로서 정책적 운신 폭을 넓히려면 반드시 벗어내고, 극복해야 할 숙제라고 본다.

첫째는 '리틀 이성태' 이미지다. 한은 안팎에서 '역대 최고의 거버너'로 꼽히는 이성태 전 총재이지만 2008년 리먼사태 이후 지나치게 원칙론을 고집했던 태도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논란이 있다. 한은의 관점에선 그게 '중앙은행다움'일지 몰라도, 국민들 눈에는 분명 '전쟁 중에도 전투 대신 교전수칙'만 고집하는 답답한 모습으로 비쳤다. 절박한 경제위기상황 하에서 중앙은행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 채 미온적으로 비쳤다면 이유불문하고 100% 한은 잘못이다.

이 총재는 당시 부총재였다. 때문에 개인성향이나 스타일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성태 체제'의 핵심일원이었던 만큼 그 이미지를 일정 부분 공유할 수밖에 없다. 부정할 건 아니겠지만 극복해야 할 과제임엔 분명하다. 리먼사태 당시 시장과 국민을 향한 한은의 소통법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냉정하게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안티 김중수' 이미지다. 김중수 현 총재가 이끌었던 지난 4년의 한은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부정적이다. 한은이 비판을 넘어 이렇게까지 냉소의 대상이 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이 총재는 2년 전 부총재 퇴임 당시 김중수 총재에 대해 공개적으로 쓴 소리를 했고 이로 인해 억울한 일까지 겪었다. 때문에 그에겐 실제 여부와 관계없이 '반(反)김중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앞으로 인사, 조직개편, 금리결정, 시장소통, 대정부관계 등에서 지난 4년의 실패부분을 바로잡아야 할 텐데 자칫 'anything but 김중수'라는 식으로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 이 또한 항상 염두에 둬야 할 대목이다.

한은에서 30여년 동안 총재 빼고는 다 해봤던, 그리고 이제 마침내 그 자리로 컴백하게 된, 어쩌면 통화정책이 가장 쉬울 수 있는 그이지만 막상 취임하면 모든 게 생각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미국의 옐런 Fed의장조차 첫 금리결정 후 '초보 티'(6개월 후 금리인상 시사발언)를 내는 걸 보면서, 이주열 총재 역시 아찔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오해와 와전이 생기더라도 시장 탓을 해선 안 된다. 시장에 화를 내서도 안되고, 가르치려 들어서도 안되고, 대화를 끊어선 더더욱 안 된다.

어쩌면 Fed와 한은의 차이는 시장을 대하는 이런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소는 꿈같은 얘기겠지만 볼커처럼 뚝심있고, 그린스펀처럼 노회하고, 버냉키처럼 과감한 그런 중앙은행 총재가 됐으면 한다.

이성철 산업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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