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일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일본의 주말이 흥청거렸다. 5%에서 8% 인상되기 전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 곳곳에서 사재기 열풍이 빚어진 것이다.
이온, 이토요카도 등 대형 할인점에는 소비세 인상에 따른 가격인상에 대비, 대대적인 할인행사에 들어갔고 생필품을 구입하기 위한 쇼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화장지, 기저귀 등 유효기간이 다소 긴 제품이 쇼핑의 집중 공략 대상이 되면서 일부 매장에서는 품절 현상이 빚어져 정작 필요한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어떤 지자체에서는 소비세 인상 대상 품목이 아닌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주민들이 싹쓸이 쇼핑해 각 가정에 자제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내는 웃지 못할 일까지 벌어졌다.
통신 판매업체는 3월 들어 화장지, 샴푸 등 매출이 전월 대비 30% 늘었고, 택배 회사들은 제 날짜에 제품을 배달하지 못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이 같은 사재기 열풍은 2011년 3월 도호쿠 대지진 직후 생필품 확보를 위해 사재기 하던 모습과 흡사할 정도다.
17년 만에 단행되는 소비세 인상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대지진 후유증 못지 않은 극도의 불안감을 드러낼 정도로 충격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일본의 물가 인상폭이 낮다고는 하지만 각종 품목별로 가격이 조금씩 올랐던 것은 사실이다. 반면 내달 1일부터는 생필품, 의료비, 교통, 학비 등 거의 모든 품목이 일제히 인상되는 만큼 소비자가 받아들이면 심리적 영향이 이전과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물건 값이 오르기 전에 필요한 것을 사두려는 일본의 사재기 열풍은 당연한 이야기다.
오히려 눈길이 가는 것은 일본 정부와 업체들이 소비세 인상을 앞두고 소비 심리 위축을 최소화하려는 대응책이다.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 회복을 지휘하고 있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소비심리 개선을 위해 각 기업체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무제한 금융완화 등을 내세운 아베노믹스가 엔저와 주가 상승을 유도한 만큼 기업들이 돈을 풀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논리였다. 기업들은 4월부터 임금 인상을 단행, 아베노믹스에 보답했다.
제조업체들도 소비심리 위축을 막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다. 일본 최대의 의류업체 유니클로는 올해 초부터 제품 가격에서 소비세를 별도로 분리했다. 일부 식품업계에서는 오히려 가격 인하를 단행했다. 이를테면 용량을 5% 가량 줄이고, 가격은 2% 인하, 소비세 인상 충격을 줄인다는 식이다. 유통업계는 가격 할인권을 대량 발매, 4,5월 구매심리가 줄어들 것에 대비하고 있다. 아오모리현의 택시업계는 내달부터 기본 요금을 640엔에서 620엔으로 낮추기로 했다. 1997년 소비세를 3%에서 5%로 인상했을 당시 이용자가 10% 감소한 사실에 비춰, 요금인하 쪽이 오히려 득이 된다고 판단했다.
업체의 이런 움직임은 소비세 인상의 성패 여부가 7월께 판가름 날 것이라는 전문가의 예측에 따른 것이다. 소비세 인상 이후 3개월간 소비 심리가 위축되지 않고 지속된다면 일단은 한시름 놓아도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일본 소비세 인상을 아베 정권의 성패여부와 관련 짓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정작 관심있게 지켜봐야 할 것은 물가 충격을 최소화하려는 일본사회의 움직임이 아닐까 싶다. 한국도 일본식 장기불황이 곧 닥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은 장기불황이 지속되면서 물가도 크게 오르지 않은 것이 그나마 경제를 받치는 버팀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매년 쉴새 없이 물가 인상이 지속되는 한국사회에 장기 불황마저 겹친다면 충격은 배가될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소비세 인상을 둘러싼 움직임을 철저히 분석, 이에 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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