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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극단 '하땅세' 윤조병·윤시중 부자, 며느리 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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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극단 '하땅세' 윤조병·윤시중 부자, 며느리 김소영

입력
2014.03.30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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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자 운명적 동지아버지는 극작·예술감독아들은 극단 대표이자 연출자며느리는 무대 디자인 등 총괄● 두 사령탑은 왜 싸울까언어 미학 중시하는 아버지행동으로 이야기하려는 아들과'살아 있는 연극' 위한 극한 대립● 시청각 소통방식 가능성 입증아동극 '붓바람' 해외 호평 이어7월 밀양연극제 개막작에'파우스트' 선정 구슬땀

운명적으로 이들은 동지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들 부자는 끈질기게 싸운다. 문제는 그 같은 길항(拮抗)의 풍경이 아름다울 정도로 진지하다는 점이다. 미학적 긴장과 갈등의 연속이라고 간주할 만큼. 결국 부자가 펼치고 있는 것은 이 폭력적 세상에 대한, 치열한 진지전(陣地戰)이므로.

"여러분은 진정한 극단이자 공동체, 그리고 연극의 현재이자 미래입니다. 지금과 같은 열기와 열정으로 도약하고 모험을 계속 해 주십시오. 여러분의 여정은 길고 봄처럼 눈부실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경기문화재단에서 극단 '하땅세' 단원들과 생활하고 부대끼며 워크숍을 진행했던 프랑스 태양극단의 연출가 모리스 뒤로지에가 귀국해서 보낸 편지에는 연극인 특유의 연대감이 충만해 있었다. 피터 브룩, 피나 바우슈, 레프 도진 등 현대 무대 예술의 거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뒤로지에와 부대낀 시간은 이 극단의 자긍심과 직결된다.

그 중심에 윤조병(76) 윤시중(46) 부자와 시중씨의 아내 김소영(44)씨가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 정년 퇴임 후 강의로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윤조병씨는 극단에서 극작과 예술감독으로 참여하고 있다. 아들 시중씨는 하땅세의 대표이자 연출자이며 용인대 뮤지컬 연극학과 교수이기도 하다. 소영씨는 무대 디자인, 의상, 소품 등 스탭 작업을 총괄하는 동시에 용인대, 백제대 등지에서 무대 미술과 설계 디자인 관련 강의도 병행한다

경기문화재단 상주단체인 이 극단이 펴낸 두터운 보고서는 낡은 형태의 예술인 연극이 21세기라는 격랑을 건너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화합과 단결의 정신이 넘쳐 흐를 것 같다. 그러나 저 극단을 견인하고 있는 투 톱으로 시선을 옮긴다면 미운정 고운정 다 얽혀 있는 드렁칡이 따로 없다. 이 세 사람의 속내를 들여다 보기 전, 최근 잇단 해외 진출 상황을 우선 참고하자. 과연 '하늘부터 땅까지 세게 간다'는 창단 정신의 외연을 확인하게 된다.

2008년 초연 이래 나라 안팎을 오가며 꾸준히 업그레이드 해 온 아동극 '붓바람'이 입증하는 것은 이들이 추구해 온 청각적ㆍ시각적 이미지의 소통 방식이다. 세 개의 조각으로 이뤄진 가변형 무대는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는 배우들의 동작과 긴밀하게 조응하는 생명체였다.

프랑스 파리 태양극단, 벨기에 브뤼셀 창작의 집,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호응 받은 이 무대는 지난해 아비뇽 연극제 오프(Off) 부문에서 주목 받은'천하제일 남가이'와 함께 이 극단의 소통 가능성을 널리 입증한 작품이다. 피터 브룩이 명저 에서 내린 연극의 분류법에 따른다면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에너지를 내뿜는 '거친 연극' 그리고 우리의 삶과 밀착되어 실제적이고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살아있는 연극'이 하땅세 미학의 요체인 셈이다. 그런데 두 사령탑은 왜 싸울까. 그들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예를 들어 이렇다.

지난해 10월 고대 희랍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새'를 원작으로 했던 국립극단의 '새'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선포했다. "부자 인연은 그대로지만 예술적으로는 절연"이라고.

"연출자와 상의해가며 인물과 상황을 새롭게 만든 작품이었다. 그런데 연습 때 보니 아들은 나의 각색작이 아니라 원작만을 갖고 배우들과 씨름 하고 있더라"(아버지). "원작을 엎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희랍극은 일단 긍정하고 들어가야 하는 고전이다"(아들). 대본을 뜯어고쳤는데 고전 상연의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는 말이다.

결국 결말부에서 아들의 의견을 관철하는 것으로 타협함으로써 일단락 되긴 했다. 그래도 여진은 남는다. "내가 제시한 텍스트 그대로 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은 조금도 변함 없다. 지나치게 긴 원 텍스트를 축약했던 것뿐이다"(아버지). "적어도 합의된 인물ㆍ상황ㆍ대사는 존중해야 한다"(아들).

저 정도는 점잖은 편이다. 4년 전 둘의 중재자이면서 평론가 역할을 꾸준히 해 온 어머니가 작고하고 보름 뒤 공연에서도 여전히 서로 싸우던 부자. 거의 기진 상태까지 치달았다. "작품이 그리 중요하냐"라고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 왈, "내 목숨보다 소중하다". 공연을 일주일 남겨두고 겨우 타협점을 찾아 무대는 올라갔다.

두 사람의 '미학적(?)' 논의를 조금 더 따라가 보자. "우리 시대 관객의 눈높이에 맞게 표현하려는 나의 시도는 아버지가 봤을 때 연극의 힘을 상실한 막장 드라떰遮?의견이시다"(아들). "젊은 혈기에, 연극은 두렛일(공동 작업)이라는 본질을 망각해서 그렇다. 숫제 배우까지 무시하고 연출, 무대, 디자인만 살리려 든다. 연극은 원래 타인과의 협업인데 젊은 사람들은 개인의 작업으로 간주한 탓이다"(아버지).

윤조병씨는 더러 신선한 아들의 아이디어가 뛰어나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그 힘이 막바지에 오면 약해져 쉬 지친다고 본다. 때로는 인생의 대선배인 자신보다 삶을 더 잘 안다는 생각까지 하는 아들이 영 못 마땅한 것이다.

그러나 아들의 생각은 영 딴판이다."나는 배우들과의 공동 작업을 선호하다 보니 작가의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다. 기존의 방식을 따르기보다 우리들만의 방식을 찾으려 애쓴다. 비효율적인 길일지 몰라도 배우들과 헤매는 방식을 즐긴다". 미리 답이나 결과를 상정하지 않는 자신의 방식에는 예기치 못한 독특한 결과가 창출되는 가외의 효과까지 산출된다는 것이다. 마치 재즈의 즉흥을 연상케 하는 개념이다.

"내가 볼 때는 아들이 대본을 아예 헤집어버린다. 배경, 인물, 테마 등 성한 구석이 없을 정도다"(윤조병). 원 대본 갖고도 얼마든 깊이 있게 할 수도 있는데 아래 세대는 대본 흐트러트리는 작업에 너무 힘을 뺀다는 말. 아예 이런 말까지 나왔다. "아들은 나의 희곡을 안 보는 것 같다. 저희들 나름대로 소설을 창작해 갖고 와서는 (대본을) 써 달라 하는 형국이다." 과연 의절 선언까지 갔을 법한 극한 대립이다. 그래도 어느 한쪽은 누그러지니 현실적으로 가능한 공동 작업 아닌가.

"나이 든 관객들은 내게 와서 왜 이리 산만하냐며 볼멘소리도 하지만, 그런데 (아들의 방식을) 젊은 관객들은 좋아하니…. 자식이라 (내가)손해 보고 만다." 아버지의 말끝이 어째 개운찮다. 틈을 주지 않고 아들은 "(우리 부자 같은)이런 식의 작업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아버지의 꽉 째인 작품과 '일부러' 거리를 두고 싶다"고 받았다.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다는 말을 듣기 싫다"고 덧붙이며 속내도 내비친다.

이해타산 관계가 개입되지 않은 터라 이들의 대립은 보다 본질적인지도 모른다. 아버지 세대가 언어의 기억 속에서 언어를 표현하는 세대라면, 아들의 시대는 행동(넌 버벌)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세대라는 괴리가 빚어낸 풍경이라는 데 둘은 합의한다. "아버지는 현실 비판 기능이라는 원칙을 여전히 신봉하며 주제를 표현하려 하신다." 아들의 말을 아버지는 이렇게 받는다. " 아들은 낯선 것을 신봉한다." 뭔가 예리하게 날이 서 있다.

제 3자인 소영씨의 관전평. 그는 "나는 항상 시아버지 편에 가깝다. 그는 연출의 과도한 개입을 본능적으로 경계한다"고 말했다. (남편이)연출의 아이디어를 관철해 나가는 과정이 폭력적이며 객관성을 상실하게 되는 이유라는 것이다. 부자의 전쟁을 쭉 지켜본 결과, 경험적으로 봤을 때 공연 2~3일 전이면 고개를 숙이는 남편이 고맙기까지 하다.

1967년 국립국장에 장막 희곡 '이끼 긴 고향에 돌아 오다'가 당선돼 데뷔한 윤조병씨는 이후 70여 편의 무대를 통해 못 가진 자들의 삶을 대변해 왔다. 사회 변혁과는 거리를 둔 작품들이었지만 유신 시절에는 공연 불허를 받은 작품도 두어 편 있었다.'이끼 낀…'의 경우 평화 통일의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해서 정보과 형사가 찾아 오기도 했다. 휴전 직전 고랑포의 밀폐된 곳에 갇혀 어쩔 수 없이 함께 있게 된 국군 병사 성직자 인민군 병사의 이야기였다.

그 같은 사실주의적 작품의 가능성을 두고 벌인 10여 년 모색 과정의 새 전기가 미국에 연극 공부하러 갔던 아들의 귀국이었다. 당시는 충돌이라기보다는 아들이 배우고 온 실험성, 신선한 정보가 좋았다. 아들도 아버지의 연륜을 인정하게 됐다. "연출 전 무대 디자인에서 아버지와 많이 충돌해요. 아버지의 고집이 세시거든요." 그러나 연극이 돼 가는 과정에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으며 버성기던 시각을 받아들이게 된다.

지난해 11월 이래 새 연극의 꿈으로 출항한 이 극단은 스태프까지 해서 단원 23명의 열정으로 꾸려지고 있다. 의정부 예술의전당 상주단체이기도 한 이 신생 극단은 오는 7월 밀양연극제 개막작으로 뒤렌마트의 '파우스트'가 선정되며 또 한번 "하늘부터 땅까지 세게 갈"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윤시중씨는 말했다. "극도의 자본주의적 상황 아래 현재 연극은 위기 상황이다. 우리는 원가로 봤을 때 저비용의 무대지만 깊이 있는 작품으로 승부한다."

장병욱 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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