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TV 연예 프로그램에서 언젠가부터 자막이 필수가 되었다. 정신 없이 쏟아내는 자막에는 허접한 내용과 문법 파괴의 문장이 난무한다. 어른들은 이해하기도 힘든 ‘허걱’ ‘헐’ 같은 감탄사 아닌 감탄 표현이 남용되는가 하면, ‘한숨 쉬지 말아’처럼 엉터리 표기를 하고, ‘홑몸’인지 ‘홀몸’인지 분간을 못하고, ‘오랜만에’를 ‘오랫만에’로 잘못 표기할 때도 있다. 영어가 전혀 필요한 대목이 아닌데도 ‘우쥬플리즈 닥쳐줄래?’ 같은 영한 혼용을 뒤섞어 그야말로 난잡하고 저급한 자막을 쏟아내고 있다.
물론 자막의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 한국인 중에도 ‘틀리다’와 ‘다르다’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은데, 출연자가 ‘한국은 일본과 틀리다’라고 말한 것을 자막에서는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로 고쳐 적어준다. 즉 출연자가 말하는 발음과 소리를 그대로 옮기는 단순 기능에서 교양의 목적을 위해 어법에 어긋난 것을 올바른 표기법으로 제시해주는 공공성을 살리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1995년 이후 판매되는 TV에 의무적으로 자막 Closed Caption 기능이 자동 내장되어 있다. 출연자가 욕을 하면 그 부분은 자막으로 ‘bleep’으로 적고 욕의 내용 자체는 전달되지 않는다. ‘삐이’ 하는 소리로 욕설 부분을 제거하고 자막으로는 ‘삐익 소리’라는 의미의 단어 bleep을 표기해주는 방식이다. 출연자가 ‘젠장 우리가 무얼 어떻게 알겠습니까?’라는 뜻으로 ‘What the hell do we know?’라고 말한 경우 TV 자막에는 ‘What the BLEEP do we know?’처럼 적는 것이다. Radio 방송에서 욕설 부분을 beep 소리로 대체하다가 TV에서는 bleep로 적게 됐다. 자막의 효과는 살리되 자정 수단으로 욕설과 비문법적인 것 혹은 천박한 내용이나 생각까지도 자막으로 처리하는 자원 낭비는 없다는 것이다.
자막이 허접한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기준과 방법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영어 자막은 ‘청각 장애인’을 위한 대체 수단으로서 최소한의 청각 대체 효과를 보완해주고, 그 문장에 오류나 비표준이 있는 경우 문법적인 문장으로 고쳐 기록해준다. 미국 대통령의 연두 기자 회견에서도 대통령의 즉석 연설과 사전에 준비된 연설문에 차이가 있는 경우 되도록 원고에 충실한 자막을 내보낸다. TV 자막의 순기능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막의 남용과 저급한 내용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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