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돌고래 수족관이 잇따라 문을 열면서 돌고래 태교, 우울증 치료 등 상상을 뛰어넘는 각종 체험 프로그램도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것은 물론 사고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효과 검증 안 된 돌고래 치유
수족관들의 돌고래 체험 프로그램은 돌고래의 등지느러미를 잡고 물속을 관찰하는 '돌핀 스노클링' '돌고래와 함께 수영하기'(제주 마린파크 운영, 거제 씨월드 예정)에서부터, 장애인과 정신질환자 대상의 '돌핀 힐링타임'(제주 마린파크)과 돌고래 치유 프로그램(거제 씨월드 예정), 임신부를 위한 '돌핀 태교'(제주 마린파크)까지 다양하다.
발달장애인, 우울증 등 정신질환자를 위한 돌고래매개치료(DAT), 돌고래 태교는 수조 안에서 돌고래를 만지고 교감하면서 돌고래가 내는 초음파의 효과를 노린다. 특히 돌핀 태교는 예약제로 운영되고 1시간에 30만원이나 할 정도로 고가지만 성황을 이루고 있다. 수족관들은 "돌고래와의 교감을 통해 정서적 안정감을 주고, 호르몬 분비를 통해 우울증 등 정신장애 치료에 좋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효과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옥진 한국동물매개심리치료학회장(원광대 애완동식물학과 교수)은 "동물을 이용한 치료는 해당 질환 전문가와 동물매개치료사가 환자를 장기적으로 관리해야지 일회적으로 만져보는 것만으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1시간 동안 진행되는 돌핀 힐링타임에는 조련사와 심리치료사가 동행한다.
초음파의 치료효과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돌고래가 내는 초음파의 일종인 알파파, 세타파가 뇌신경 발달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치료효과가 있을 만큼 지속적이지 않다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독일 베를린자유대 연구진은 2003년 국제학술지 '이론생물학저널'에 "초음파를 치유 목적으로 쓰려면 지속시간이 길고 반복적으로 발생해야 하는데, 수족관 돌고래의 초음파는 그렇지 못해 치료에 부적합하다"고 발표했다. 12세 이하 정신질환 어린이가 있는 수조에서 돌고래를 행동을 30분간 관찰한 결과 5마리 중 1마리는 90초 동안 초음파를 냈고, 나머지는 40~50초에 그쳤다.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행동생태연구실 장수진 연구원은 "수족관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초음파가 큰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수족관 돌고래는 소리의 세기, 지속시간을 줄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동물과 교감하는 정도라면 몰라도 태교와 치료 효과를 과도하게 홍보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 교수는 "장애아를 키우거나 건강한 아기가 태어나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을 이용한 '희망고문'"이라고 말했다. 국제환경단체인 '고래ㆍ돌고래보존협회(WDCS)'는 2007년 돌고래매개치료 종합보고서에서 "우울증, 정신질환, 신체장애 등의 치료에 효과적이거나 다른 동물매개치료보다 효능이 뛰어나다는 것은 입증되지 않았다"고 했다.
수족관 돌고래, 사람 공격하기도
사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수족관들은 체험자가 수조 안에 돌고래와 함께 머무는 동안 조련사가 동행하는 것 외에 별다른 안전책을 마련해 놓고 있지 않다. 거제 씨월드 인허가기관인 거제시청 해양항만과 관계자는 "사고가 날 가능성은 없다"며 "해외에서도 체험형 돌고래 수족관을 많이 운영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수족관 고래류가 사람에 위해를 가한 사례가 수없이 보고돼 왔다. 2010년 2월 미국 플로리다주 올란도의 해양테마파크 시월드에서는 쇼를 하던 범고래가 여성 조련사를 공격해 숨지는 끔찍한 사고가 있었다. 2000년부터 10년간 이곳과 샌디에이고 시월드에서만 9명이 돌고래와 범고래에 물려 병원신세를 졌다. 모두 먹이를 주거나 만지다가 다쳤다. 2006년 쿠바에서는 바다를 막아 만든 체험장에서 한 여성이 함께 수영하던 돌고래에 들이받혀 갈비뼈가 부러졌다. 이형주 동물자유연대 팀장은 "위험성이 있어 비교적 넓은 바다에 체험시설을 만들지만 그래도 사고가 난다"며 "국내처럼 수영장 크기의 좁은 수조에서 돌고래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항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야생에서 사람에게 친근한 모습이 널리 알려졌지만 돌고래를 포함한 고래류는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라며 "길들였다고 해도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워 수조에서 같이 수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했다. 장수진 연구원도 "계속된 스트레스로 공격적인 이상행동을 보일 때 몸무게 200㎏ 이상인 돌고래를 조련사가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인수공통병 감염으로 유산까지
동물에서 옮는 인수공통질환의 감염 가능성은 또 다른 위험요인이다. WDCS는 이 같은 이유로 수조에서 돌고래와 같이 수영하거나 만지는 행위를 자제하라고 권고한다. 아동, 노인 등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 폐렴 등을 일으키는 '기회감염 박테리아'가 돌고래에서 발견됐다거나 수중 포유류와 주기적으로 접촉하면 피부발진을 앓을 가능성이 23%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최근에는 남태평양부터 북극해까지 전 세계 곳곳의 돌고래에서 브루셀라 병원균의 항체가 확인됐다. 돌고래가 인수공통질환인 브루셀라병(항원)에 걸린 적이 있다는 뜻이다. WDCS는 "야생에서 포획돼 수족관으로 옮겨진 돌고래가 감염됐다면 브루셀라병을 사람에게 옮길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병은 입과 상처 난 피부 등을 통해 전염된다. 염소 등 화학물질로 물을 소독해도 체험 도중 돌고래의 호흡이나 배설물을 통해 감염될 수 있다. 주요 증상은 오한, 두통, 피로감 유발이나 심할 경우 유산과 불임까지 초래한다. 면역력이 낮은 임신부는 더욱 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은 제대로 고지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3월 결혼한 김모(31ㆍ여)씨는 "이번 달 제주도로 태교여행을 가면서 돌고래 태교를 알아봤지만 감염 가능성이나 돌고래의 돌발행동 등 위험여부에 대한 설명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곳 관계자는 "돌고래 초음파가 뇌신경 등 태아의 발달을 돕는다"며 "임산부에게 위험하면 어떻게 운영을 하겠냐"고 되물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