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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 '종이 집' 뚝딱… 난민·이재민에게 최고의 보금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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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 '종이 집' 뚝딱… 난민·이재민에게 최고의 보금자리

입력
2014.03.28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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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는 건축물의 발달과 함께 진보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이 세계의 위대한 건축물을 대상으로 삼는 것도 그 시대의 문화를 집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이 모든 시대의 건축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건축물에는 가렸지만 서민과 함께 숨쉬던 건축물도 적지 않았다. 비록 오랜 수명을 갖지 못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말이다.

반 시게루(坂茂ㆍ56) 교토조형예술대 교수는 빈자를 위한 건축가, 종이 건축가로 유명하다. 그는 화려함과 함께 서민적 가치관을 두루 자신의 작품 세계에 녹여낸 인물이다. 현대미술관인 프랑스의 퐁피두-메츠센터와 카리브해 턱스앤케이코스 섬의 고급 빌라를 설계한 반면, 재해지역을 돌아다니며 난민구호를 위한 집 짓기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런 연유로 그는 최근 프리츠커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미국의 프리츠커 가문이 소유한 하얏트 재단이 1979년 제정한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일컫는 권위적인 상이다. 반은 단게 겐조, 마키 후미히코, 안도 다다오, SANNA(니시자와 류에, 세지마 가즈요), 이토 도요에 이어 일본인으로는 7번째 수상자이며, 일본은 프리츠커상 최다 수상자를 탄생시킨 나라가 됐다.

1982년 미국 쿠퍼 유니온대 건축학부 출신으로, 85년 자신의 건축 스튜디오를 설립해 일하던 반은 95년 유엔난민기구(UNHCR)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종이 건축이라는 장르에 눈을 떴다.

반은 르완다 내전으로 난민이 된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포장용 상자를 판지에 말아 만든 종이 튜브로 임시 보호소를 지었다. 당시 유엔난민기구는 주민들에게 알루미늄 기둥과 플라스틱 판을 지급하고 집을 짓도록 했으나, 굶주림에 허덕인 주민들은 이들을 모두 시장에 내다팔았다. 반듯한 집을 찾기가 어려운 현실을 타개 하기 위해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였다. 종이는 돈이 적게 드는 데다 친환경적이라는 장점도 있었다.

그는 재해 현장이나 분쟁으로 난민이 발생한 지역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달려갔고, 새로운 공법의 종이 건축물을 선보였다. 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반은 스펀지를 종이 판지에 끼운 패널에 플라스틱과 모래주머니를 활용한 건물을 건축했다. 당시 그가 난민들을 위해 지은 종이로 만든 교회는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 교회는 2008년 해체됐으나 이후 대만에서 새롭게 선보였다.

1999년 터키, 2001년 인도 구자라트 지진현장에서 그는 종이 칸막이 시스템(Paper Partition SystemㆍPPS)으로 임시 보호소를 지어 주민들의 안락한 생활에 보탬을 줬다.

2004년 니가타현 지진, 2005년 후쿠오카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 등을 겪으면서 반은 보다 튼튼한 PPS를 개발했고, 2011년 3월 도호쿠 대지진 발생직후에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PPS4를 개발했다.

반은 "PPS4는 이재민들이 집단 생활하는 집합장소에서 기둥과 대들보로 만든 종이 튜브 프레임을 조립보 부분에 걸치는 것만으로도 프라이버시를 보장할 수 있다"며 "피난민 스스로 설치가 가능할 정도로 취급방법이 쉬운데다 천으로 된 커튼처럼 열고 닫기도 편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여름에는 재해 지역에서 모기나 파리가 대량 발생, 피해주민을 괴롭히자 그는 종이 튜브 프레임에 모기장을 단 모기장 버전을 개발하기도 했다.

인도적인 반의 활동이 널리 알려지면서 전 세계에서 반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운동이 전개됐고, 이런 지원금 덕분에 반은 도호쿠 대지진 재해 현장 50여 곳을 돌며 1,800여 개의 간이 칸막이를 설치했다.

반은 2010년 아이티 지진 당시 이웃국가인 도미니카공화국을 먼저 방문했다. 이 곳에서 건축학 전공자와 학생들을 데리고 아이티를 방문한 반은 이재민과 함께 방수처리된 이동식 가옥을 짓기도 했다. 여주 해슬리나인브릿지 클럽하우스, 올림픽공원에 들어섰다가 해체된 페이퍼테이너뮤지엄 등 한국에도 그의 작품 다수가 소개됐다.

상을 주관한 미국 하얏트 재단은 "세계의 재난 지역을 찾아 다니며 재해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창조적이고 인도주의적인 건축물을 지은 공로로 상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파리에 체류중인 반은 "집을 지어주기를 원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더욱 귀담아 듣고, 재난 구호작업에 임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도쿄=한창만특파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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