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규제개혁이 강력히 추진되고 있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찮다. 기다렸다는 듯 분위기에 편승해 적절한 규제까지 '손톱 밑 가시'로 몰아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들 때문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실책을 피하려면 원칙 있는 균형감각이 절실하다.
김영삼 정부 때도 지금 못지 않은 규제개혁 바람이 불었다. 김 전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한 세계화 정책이 바람의 진원지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기 가입 욕심에 규제를 너무 서둘러 풀었다는 비판도 있지만, 당시의 자유무역주의 대세와 시장개방 압력 때문에라도 국내 경제제도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정비하는 건 불가피했다.
그런데 규제개혁을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아무데나 갖다 붙여 엇나가는 바람에 나라가 망하게 됐다. 1994년 '업종전문화정책'을 섣불리 폐기해 국내 산업질서가 전대미문의 혼돈에 빠진 사태에 관한 얘기다.
업종전문화정책은 당시 각 재벌그룹마다 주력업종을 지정해 집중 육성을 유도하기 위한 시책이었다. 가장 잘 할 사업에 주력해 장차 글로벌 산업 경쟁에 대비하자는 포석인 셈이었다. 사실상 정부가 기업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획정한다는 면에서 구시대적 관치(官治)로 볼 수도 있으나, 국내 기업 간의 소모적 경쟁을 지양하면서 가장 효율적으로 산업별 '국가대표'를 육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업계로선 껄끄럽기 짝이 없는 규제였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을 구가하면서 기업 금고엔 돈이 넘쳐났고, 외자 조달 규제 완화로 자금줄도 훨씬 풍부해졌다. 21세기를 겨냥해 새롭고 유망한 사업에 진출하려는 다각화 의욕이 팽배했다. 삼성은 숙원이던 자동차 사업 진출을 노렸고, 한보는 당진제철소 확장 건설에 사활을 거는 식이었다. 자연히 업종전문화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와 정치권을 파고들어 뒤흔들었다.
결국 삼성 자동차 공장이 들어설 부산 출신의 한이헌 청와대 경제수석이 운을 뗐다. 그는 "정부가 기업 주력업종을 지정하면 기업의 유효경쟁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업종전문화든 다각화든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후 박운서 당시 상공부 차관은 "세계화 하자는 것 아닙니까? 산업정책도 이젠 경쟁을 촉진하고 민간의 자율을 제고하는 쪽으로 가야죠"라며 마침내 삼성 자동차 허용 방침을 밝혔다.
그런 식으로 업종전문화정책이 개혁 대상 규제로서 폐기되자 사단이 났다. 구(舊) 기아자동차는 강적 삼성에 맞선다며 분식회계로 눈덩이처럼 빚을 불려 무리하게 생산설비를 확장하면서 곪아갔다. 철강 부분에서도 한보는 물론이고, 기아와 삼미까지 특수강 사업을 확장하면서 빚더미를 쌓아갔다. 당시 천문학적 투자경쟁의 후유증이 결국 한보와 기아차, 삼미철강 등의 연쇄 부도로 이어지며 1997년 외환위기를 초래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에도 '손톱 밑 가시'가 아니라, 아예 '손톱'을 뽑아버리자는 무리한 요구가 들썩이고 있다. 청소년 넷 중 하나가 스마트폰 중독이라는 데도, 문화부 장관까지 나서 게임산업 규제를 없애달라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가까스로 시동된 중소기업적합업종제가 부당하다는 비난이 빗발치고, 법인세 저항도 다시 가열되고 있다. 자칫 눈 앞의 욕심에 휘둘려 미래 세대의 건강과 공정경제, 세정의 균형을 크게 뒤흔들 위험한 발상들이다.
대다수 국민은 지금 박근혜 대통령의 규제개혁 드라이브에 아낌 없는 지지와 성원을 보내고 있다. 그런 호응을 알기에 '끼워팔기'식의 잘못된 규제 철폐가 규제개혁 대장정에 큰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더욱 경계하고 싶다. 규제개혁의 성패는 결국 규제를 없앤 개량적 실적보다, 규제개혁의 내용이 얼마나 적절하고 효과적이었느냐는 질적 성과로 평가될 게 분명하다. 원칙을 분명히 세워 없앨 규제와 지킬 규제를 엄정히 가려내기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