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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호야의 '샴' 시리즈를 보고

입력
2014.03.28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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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 호야는 일관되게 샴(Siam) 시리즈를 통해 이미지의 신체에 주목해온 작가다. 그는 이미지 역시 하나의 신체를 가질 수 있다고 믿는 보기 드문 작가 군에 해당한다. 그는 이미지가 스스로의 생명으로 그림 속에서 꿈틀거리기 바란다. 몇 번의 전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지만 이러한 그의 고집은 두드러져 보인다. 그에게로 가서 대상은 하나의 이미지와 신체가 만나는 혈자리가 된다. 그에게 작업이란 이미지들이 숨쉴 수 있는 대상을 고르는 일이며, 그에게 드로잉이란(그는 초기 드로잉을 중요시한다) 자신의 이미지들끼리 어떻게 존재한 적 없는 구도 속에서 섭생할 것인지 관계를 만들어 주는 일이다. 그에게 구도란 세상에 존재해온 이미지들 사이에 틈을 만들고 그 사이를 유영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그는 이미지에 호흡을 불어넣고 있다. 어두운 창고에서 그의 호흡을 받아먹은 이미지는 살을 얻고 피를 흘리며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눈을 뜨고 있다.

그가 집중해온 샴 시리즈의 독특하면서도 진귀한 풍경에 대해, 그의 작품이 지니고 있는 이 고결한 몽환과 도도한 침묵에 대해 어떻게 말할 것인가? 나는 몇 번인가 그의 텍스트 속으로 메아리를 던져본 적이 있다. 그때마다 내 필기술의 형용사가 그의 작품이 지닌 원심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참하게 밖으로 밀려나오는 것을 목격하기도 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호야는 자신의 그림 속에서 어떤 여행을 하고 있는가? 그는 선을 여행이라고 믿는 자이다.

호야의 첫 번째 샴이 '몽환의 기형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호야의 두 번째 샴이 '특별한 여행'에 다다르고 있었다면, 이번 호야의 'The Siam volume 3- 꿈의 정원'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호명술을 필요로 한다. 호야의 호명법은 이번엔 민화를 불러온다. 세간을 포기하고 산기슭으로 기어들어가 자신의 환영에 가득 찬 철필을 믿는 한 화가의 절명에 대한 답가처럼, 호야는 자신이 지속해온 이 '초록과 붉음으로 물든 한기'를 자신이 만든 민화로 초대하고 있다. 그는 이 몽롱한 신체들을 민화의 피부에 이식시켰다. 이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가 눈을 막 뜨게 해준 새들과 고양이와 짐승들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낯선 세계를 두리번거리고 있다. 당신들은 그 눈동자들과 마주칠 수 있을 것인가? 그는 아무도 모르는 눈동자를 데리고 산다.

호야의 이번 샴 시리즈에는 상사화가 가득 피어있다. 상사화는 꽃과 잎이 함께 피지 못하는 화초(花草)이다. 상사화는 수선화과에 속하지만 어떤 꽃도 가지지 못하는 구근을 가진 채 이 세상의 바람에 잠시 흔들리다가 스러져간다. 상사화는 봄에 선명한 녹색의 잎이 무더기로 나온 후 잎이 모두 말라 없어진 다음, 꽃대를 밀고 나와, 그 끝에 여린 몇 송이의 꽃을 피우곤 간다. 하여 잎과 꽃이 서로를 그리워 하다가 간다. 그의 민화에 담긴 꿈은 이러한 목측을 예감하는 자에겐 눈물겨운 색채와 질료를 드러낸다. 가만히 다가가 손을 뻗어 뭉클한 그의 생명들을 더듬거리고 싶어진다. 민화 속에 담긴 짐승과 식물들은 같은 세계'시차'에 놓여 있지만 서로 다른 세계'시차'에 살고 있는 듯하다. 서로를 만나기 위해 그들은 눈동자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날개를 펴기도 하고 이 가지에서 저 나뭇잎으로 체액을 옮기기도 한다. 호야는 그리움을 아는 자이다.

민화의 매력은 표정에 있다. 민화(民花)는 민화(民話)이기도 하다. 희화화된 민화의 특징은 그림 속 대상들의 기묘한 표정이 말하는 화술에 기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가 자신의 화폭 속에 산기슭을 흘려놓고 그 곳에 공작이나 산제비 나비 몇을 둥둥 떠다니게 하는 동안, 이 그림 속에는 너무나 살뜰하고 다정하며 아름답지만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나라의 표정들이 많다. 그의 화술(畵術)은 아직도 가난하지만 매혹과 지독한 허기로 가득 차 있다. 그는 세상의 어떤 화가들보다 자신의 이미지를 '살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이므로.

김경주 시인ㆍ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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