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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는 난관에 처한 자본주의가 거둔 역설적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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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는 난관에 처한 자본주의가 거둔 역설적 승리"

입력
2014.03.28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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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출신 세계적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89)이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터졌을 때 멕시코 사회학자 시트랄리 로비로사-마드라조와 나눈 대담집이다. 오늘날 전 세계가 직면한 현대 사회의 위기와 인간 조건의 미래에 대해 뛰어난 통찰력으로 대답을 들려준다. 원서(원제 'Living on Borrowed Time')는 2009년 나왔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다.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으로 시작해 국가, 인권, 노동과 시장, 민주주의, 환경 위기, 인구와 빈곤 문제, 여성의 지위, 첨단과학의 발달에 따른 성과 사랑의 미래까지 전방위에 걸쳐 열정적 질문과 신중한 답변이 이어진다.

바우만은 19세기는 생산자 사회였지만 21세기는 소비자 사회로 변했으며 이에 따라 자본은 노동이 아니라 신용을 착취한다고 지적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재의 금융 위기는 자본주의 종말의 신호가 아니라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가 거둔 역설적 승리다. 신용카드로 살아가는 채무자를 양산함으로써 '새로운 방목지'를 찾아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우리는 '주체적으로 노동하는 건강한 삶' 대신 '빌려온 잉여적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바우만의 진단에 따르면 신용 착취 사회에서는 노동과 노동자의 관리를 목적으로 했던 국가와 정치의 역할도 급변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이상적으로 구현했던 '사회복지국가'는 오히려 역사적 예외였으며, 더 이상 실현 불가능한 환상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현대의 소위 '진보' 정치는 이에 대한 향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아무런 진보도 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으로 현대 사회를 분석해 왔다. 그에 따르면 현대는 끊임없이 변하는 액체처럼 유동성과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세계다. 근대 사회를 단단하게 지탱하던 제도와 풍속, 도덕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이 책은 낙관적 전망이나 섣부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냉정한 분석과 신중한 모색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고 어디로 가는지 생각하게 만든다.

오미환 선임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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