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 당신을 찬미합니다. 주님 당신을 신뢰합니다."
100여년 전 프랑스 파리 도심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에 있는 팔각정에서 신학생들이 한국에 파견된 선배 선교사의 순교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불렀다는 감사의 노래 '테 데움(Te Deum)' 가사의 일부다. 팔각정에는 제2대 조선교구장 앵베르 주교,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 등 한국에서 순교한 뒤 성인 반열에 오른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 10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처럼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흘린 피를 빼놓고서는 한국 가톨릭 교회사를 말하기 어렵다.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최용록(86) 신부는 2002년 9월 은퇴 후 이제껏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서한과 문서를 번역하고 있다. "한국에 파견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뜨거웠던 삶에 감동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선교 열정을 잊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1년 7개월째 번역 작업을 하고 있는 최 신부는 "당시는 선교사제들이 편지로 활동을 보고했기 때문에 서한에 온갖 사목 보고가 다 담겨 있다"고 소개했다. 성당 땅을 사는 이유는 물론 성당ㆍ사제관 수리 비용과 성당 학교 교사 월급, 고아를 맡긴 위탁모에게 준 보육료 등 사소한 내용이 다 서한에 보고돼 있다.
최 신부는 "개화기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은 미국 선교사의 50분의 1도 안 되는 예산으로도 미국 선교사보다 더 충실하게 선교활동을 했다"며 "돈 없어 쩔쩔 매던 프랑스 선교사제들에 비하면 오늘의 사제는 지나치게 풍족한 환경에서 선교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최 신부는 최근 니콜라스 조셉 마리 빌렘(1860~1938ㆍ한국명 홍석구) 신부가 안중근(토마스ㆍ1789~1910) 의사의 의거 및 순국 전후 비화를 자신의 고향 로렌주에서 발행되던 '프리부르크 가톨릭 선교'와 '메츠 폴크스팀메', '로렌' 등 교회잡지에 기고한 자료를 찾아내 공개했다. 빌렘 신부에 따르면 1910년 3월 26일 순국한 안중근 의사는 4년 넘게 중국 등을 떠돌면서도 하루도 기도를 빼먹지 않았으며 뤼순(旅順) 감옥에서는 자신의 요청으로 한국에서 감옥을 찾아온 빌렘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했다고 한다. 최 신부는 "2만쪽에 이르는 빌렘 신부의 서한과 문서 중 5,000여쪽 밖에 번역하지 못해 아쉽다"며 "죽기 전까지 번역을 마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욕을 나타냈다.
최 신부는 평양에서 태어나 1963년 프랑스 낭시 신학대를 졸업한 뒤 같은 해 사제품을 받았다. 벨기에 루뱅대와 캐나다 로욜라대, 미국 보스턴대에서 수학한 뒤 69년 귀국해 서대문ㆍ여의도ㆍ목5동ㆍ청량리ㆍ수서동 등에서 본당 주임을 맡았으며 가톨릭대 신학원장, 절두산 순교기념관장 등을 지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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