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모(47)씨는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 경계 수준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몸에 안 좋은 저밀도(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혈액 1㎗ 당 160㎎으로 높았다.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였지만, 비용은 모두 강씨가 부담했다. 고지혈증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기준이 LDL 콜레스테롤이 아닌 혈중 총 콜레스테롤 수치 250㎎/㎗ 이상인데 강씨의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200㎎/㎗였기 때문이다.
치료를 망설이던 강씨에게 희소식이 들렸다. 올해부터 보험 적용기준이 총 콜레스테롤에서 LDL 콜레스테롤 수치로 바뀌어 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흡연과 나이, 고혈압, 관상동맥질환 가족력 등 고지혈증 위험요인도 기준에 추가됐다. 강씨의 경우 흡연과 나이가 위험요인에 해당된다. 새 기준에 따르면 위험요인이 2가지 이상일 땐 LDL 콜레스테롤 수치 130㎎/㎗부터 보험 혜택을 받고 약 처방을 받을 수 있다.
고지혈증 치료제의 보험기준이 개정된 건 2001년 이후 13년만이다. 그 동안 의료계에선 기준 개정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 왔다. 총 콜레스테롤보다 LDL 콜레스테롤 수치가 고지혈증을 비롯한 심혈관질환의 위험을 더 높이는 요인이라는 게 수년 전 밝혀졌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의료 선진국들은 오래 전에 보험기준을 LDL 콜레스테롤로 바꿨다. 총 콜레스테롤 수치는 LDL과 고밀도(HDL) 콜레스테롤, 중성지방 일부를 모두 합한 것이다. HDL 콜레스테롤은 몸 속 여러 곳의 콜레스테롤을 모아 간으로 보내 처리하고, LDL 콜레스테롤은 세포에 지방을 쌓이게 만든다. LDL 콜레스테롤을 비롯한 지방이 필요 이상으로 혈관에 축적된 상태가 고지혈증이다.
윤영길내과의원 윤태성 원장은 "의사들이 임상에서 정작 중요하게 여긴 건 LDL 콜레스테롤 수치였는데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총 콜레스테롤 기준에 맞춰 약값에 비싼 비급여로 처방해야 했다"며 "늦었지만 다행히 현실이 반영돼 더 많은 환자가 치료 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흡연과 가족력 같은 위험요인이 보험 기준에 함께 포함된 것 역시 의학적으로 의미 있다. 심혈관질환을 일으킬 요인을 가진 환자에게 보험 혜택을 줘 제때 치료 받게 함으로써 발병을 미리 막겠다는 것이다. 사후 치료보다 사전 예방을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의학의 흐름이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서울대병원 심장내과 김효수 교수는 "심혈관질환 위험요인이 있는 환자는 LDL 콜레스테롤 수치 관리를 엄격히 하고, 효과가 입증된 약을 신중히 선택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앞으로는 심혈관계 환자의 현재 상태뿐 아니라 미래에 영향을 미칠 위험요인까지 더 꼼꼼히 따져보게 돼 장기적으로 치료 효과가 높아질 것으로 의료계는 예상한다. 최신 의학을 반영한 합리적인 보험 기준이 여러 질병에 발 빠르게 적용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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